[황정미칼럼]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황정미 2021. 6. 2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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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분열 남긴 '대통령 정치'의 부재
'소명' 선언한 尹, 정치력 시험대 올라

당연한 말이다. 특정 정당의 후보로 대국민 공약을 발표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정치지도자가 대통령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불행은 그 자리에 오르는 순간 정치인과는 다른,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돼 버리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 안보와 국익을 책임지고 정부 정책을 관장하는 대통령이 특정 정파를 대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뽑지 않은 국민들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국가 최고지도자이니 그에 걸맞은 ‘고도의 정치인’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당 총재까지 맡았던 ‘제왕적 총재’시절 대통령과 당 지도자의 경계가 흐릿했던 건 사실이다. 대통령이 당내 권력투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 시절 청와대는 여야 정치인들이 오가는 정치현장이었고 대통령은 정치주역 중 한 명이었다. 그때 국회를 통과한 법안 비율이 더 높았다는 통계도 있다. 정치개혁 차원에서 추진된 당·청 분리 이후 첫 대통령인 노무현은 ‘대통령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을 오가며 정치적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야당과의 대연정, 원포인트 개헌과 같은 ‘정치인 노무현’의 의제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정치를 멈추지는 않았다.
황정미 편집인
이명박(MB) 대통령은 아예 ‘CEO 대통령’을 내세우며 노골적으로 정치를 멀리했다. MB는 자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을 종종 청와대로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자신의 후계자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탓이다. 그중 한 명인 김문수 경기지사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는데 그래서는 큰 리더십을 형성할 수 없다. 정치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갖고 있는 게 당신의 큰 한계”라고 했다.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도 정치와 거리두기 측면에서 매한가지다. 국회보다는 국민에 호소하기를 더 선호하는 성향도 비슷하다.

갈등이 부딪치고 터지는 곳이 여의도이니 늘 난장(亂場)일 수밖에 없다. 국회나 야당을 질타한다고 갈등이 해결된 적이 있던가. 거대 의석의 힘으로 정책을 밀어붙여 성공했나. 오히려 국민들 사이에 갈등만 깊어졌다. 최종적으로 갈등의 조정자여야 할 대통령이 정치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사회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타협하는 것뿐이다. 소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차기 대통령을 뽑는 이번 대선은 이례적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어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독립선언하듯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그제 최재형 감사원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권 도전의 길을 열어놓았다. 정권에 복무한 검찰총장, 감사원장 출신이 야권 후보로 나서는 비정상적 상황을 만든 건 문재인정부의 최대 패착이다.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라고 몰아붙인들 자신들이 그간 자행한 중립성 훼손 이력을 부각시킬 따름이다. 윤석열, 최재형이 비토했던 김오수 검찰총장 체제의 권력수사 뭉개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그들이 대선에 나갈 자격이 되느냐는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두 사람 모두 ‘소명’을 강조한다.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공정의 가치 수호’를, 최재형은 ‘국가 미래를 위한 역할’을 언급했다. 윤석열은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며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강조했지만 왜 본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소명의식에 압도돼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건 아니길 바란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정치의 복원이다.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는 ‘반(反)정치’ 행보로 깜짝 인기를 얻었던 이들은 거품과 함께 사라졌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권력게임이다. 소명도, 민생도 제도권 정치 안에서 타협과 설득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평생 시시비비를 따지며 ‘단죄’의 영역에서 경력을 쌓은 윤석열은 어제 출마 선언으로 ‘정치인 윤석열’이 됐다. ‘반문재인 연대’가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치열한 갈등 현장에서 정치력이 드러난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요행은 없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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