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맛깊은인생] 평균 타율 3할의 즐거운 미식가

- 2021. 6. 2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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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내와 옆동네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들어가 볼까? 왠지 김밥이 맛있을 것 같은데." 조그만 탁자 셋이 놓인 실내는 여느 동네 분식집과 다를 바 없었다.

김밥은 보기에 평범했지만 맛은 보기와는 달랐다.

주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의 입맛에 맞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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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내와 옆동네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들어가 볼까? 왠지 김밥이 맛있을 것 같은데.” 조그만 탁자 셋이 놓인 실내는 여느 동네 분식집과 다를 바 없었다. 벽에는 메뉴가 붙어 있었는데 ‘직접 빚은 철판 만두’도 있었다. 만두 마니아로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김밥 한 줄과 만두 한 접시를 주문했다. 아주머니는 김밥을 말고 아저씨는 만두를 구웠다. 먼저 나온 육수 그릇을 홀짝이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직접 우려낸 육수는 멸치맛이 강했다. 육수 맛을 보는 순간 이 집 음식이 괜찮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 보았을 때, 육수가 좋은 집은 음식 맛도 대부분 좋았다.

김밥과 만두가 나왔다. 김밥은 보기에 평범했지만 맛은 보기와는 달랐다. 단무지, 달걀, 볶은당근 등 속은 평범했지만 맛은 비범했다. 그래, 이게 김밥의 묘미지. 만두는 기대와는 다른 맛이었다. 노릇하게 구워져 나온 만두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간장에 살짝 찍어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속에는 당면이 꽉 차 있었다. 곧 아차, 여긴 분식집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만두를 ‘즐겁게’ 먹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학교 앞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이런 만두를 줄기차게 먹어댔지. 분식집을 나오며 아내에게 말했다. 안타.

며칠 전에는 작업실 주변에 있는 인도 커리를 파는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주 오래전에 생긴 집인데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어쩌다 그날 가게 됐다. 커리와 난으로 이루어진 점심 세트 메뉴를 주문했는데, 인도 커리라고 하기엔 너무 달았고 향도 밋밋했다. 주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의 입맛에 맞춘 것 같았다. 2루수 앞 땅볼.

어느 날은 짜장면이 먹고 싶어 검색을 하다가 어느 개그우먼이 극찬했다는 ‘돌짜장’을 파는 식당이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뜨거운 돌판 위에 짜장면을 올려주는 집이었다. 짜장면에는 차돌박이와 새우, 오징어가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흔히 먹는 짜장면과는 약간 다른 비주얼, 약간 다른 맛이었다. 내 입맛에는 맛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뭐라고 할까, 그럭저럭 수긍할 만한 맛이었다. 음, 이런 맛이 있을 수도 있겠군. 내야안타.

되도록이면 한 번 간 집에는 가지 않으려고 한다. 인생은 짧고 우리가 가야 할 식당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만 되면 나는 이 집 설렁탕은 어떤 맛일까, 저 집 김치찌개는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삼진아웃, 병살타, 외야플라이…. 실패할 때가 더 많지만 뭐 어쩌랴, 시도에는 실패가 따르는 법이니까. 다행인 건 내가 음식에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맛도 있군, 놀라운 맛인데, 이 음식 재미있다, 좋은 경험이었어. 식당 문을 나서는 순간 맛 같은 건 금방 잊어버린다.

‘맛집 타율’은 2할 9푼에서 3할 1푼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타자 아닐까? 그러니까 지나간 끼니는 잊고 다음 끼니를 기대합시다. 조금 더 너그러워지면 조금 더 즐길 수 있으니까요.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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