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조선 전기 금속활자

차준철 논설위원 2021. 6. 2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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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인사동 유적에서 매우 희귀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하던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과 물시계 옥루 혹은 자격루의 부속품인 ‘주전’(籌箭)으로 추정되는 동제품까지 한꺼번에 출토됐다고 문화재청이 29일 밝혔다. 사진은 인사동에서 나온 금속활자. (문화재청 제공)

금속활자는 지난 1000년 인류를 변화시킨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꼽힌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 1377년 고려 때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보다 70년 앞섰다. 하지만 활판 인쇄로 금속활자를 대중화한 것은 구텐베르크였다. 서구에서 금속활자는 인쇄 혁명을 낳아 대량 출판을 통한 광범위한 지식·정보 전파를 가능하게 하며 새 시대, 근대를 열었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그 시대 정보 전달의 꽃이었다.

활자가 생기기 전까지는 일일이 베껴쓰는 필사 아니면 통째로 깎은 목판을 인쇄하는 방식으로 책을 찍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돈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활자가 고안됐다. 11~12세기 중국에서 진흙활자, 나무활자가 나왔는데 금세 부스러지고 갈라지는 단점 때문에 실용화되지 못했다. 이후 등장한 금속활자는 이런 단점 없이 대량 출판을 가능하게 한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요즘 대세인 디지털 출판, 3차원 인쇄에 비견할 ‘혁명적 사건’이기도 했다.

문화재청이 서울 인사동 발굴조사 현장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400여년 전 묻힌 항아리 안에서 한글 활자 600여점, 한자 활자 1000여점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 금속활자는 약 30점 현존하는데, 한 곳에서 다양한 활자가 무더기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1440년대 구텐베르크의 인쇄 무렵이나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다수 포함돼 향후 연구가 주목된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활자와 구텐베르크 이전의 한자 활자 실물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발굴 현장에선 물시계·천문시계의 부품과 총통·동종 등 금속 유물도 함께 출토됐다. 이 또한 세종 이후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발달상을 가늠할 소중한 유물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가상현실이 익숙한 4차 산업혁명 시대다. 하루가 다르게 새 기술이 들이닥친다. 금속활자뿐 아니라 각종 첨단 기술 장비가 만들어진 조선 전기에도 IT 바람이 휘몰아쳤을 것 같다. 이번에 발굴된 인사동 유물들이 말하고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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