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상황서 의도적으로 파묻은 흔적" [종로서 쏟아진 600년 전 유물]

박지현 2021. 6. 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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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한양의 중심부인 서울 인사동 한복판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가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 1600여점이 무더기로 출토된 가운데 이 활자가 왜 이곳에 묻혔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유물 출토에 참여했던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이번 유물들은 창고로 추정되는 곳에서 출토됐다"며 "금 간 도기 안에 금속활자와 물시계의 주전 등이 같이 발견됐고 동종과 총통은 도기 내부에서 출토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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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뺀 나머지 유물 중 일부
잘게 잘린 파편 형태로 남아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사진=뉴스1

옛 한양의 중심부인 서울 인사동 한복판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가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 1600여점이 무더기로 출토된 가운데 이 활자가 왜 이곳에 묻혔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2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 출토 유물은 서울 종로2가 사거리 북서쪽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에서 발견됐다. 이곳은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 견평방(堅平坊)에 속하며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와 전의감을 비롯해 왕실의 궁가인 순화궁·죽동궁 등이 위치해 있고, 남쪽으로는 상업시설인 시전행랑이 있었던 운종가가 있던 곳이다. 조사 결과 이 지역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 문화층이 확인됐다.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으로 16세기 층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들은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동 제품들은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분석됐다.

활자들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붙은 것들도 일부 확인됐다. 이들의 사용 및 폐기 시점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중국 명나라 신종 때의 연호인 만력(서기 1573년부터 1619년까지) 무자년(1588년)에 제작된 소승자총통이 있어 1588년 이후 묻혔다가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유물 출토에 참여했던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이번 유물들은 창고로 추정되는 곳에서 출토됐다"며 "금 간 도기 안에 금속활자와 물시계의 주전 등이 같이 발견됐고 동종과 총통은 도기 내부에서 출토됐다"고 밝혔다. 오 원장은 "출토된 유물들은 의도적으로 묻은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유물들이 일정한 크기로 잘려 있는 것을 보면 어떤 분이 의도적으로 파묻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상황이 매우 긴박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어 오 원장은 "이번 유물들의 성분을 분석하지 못했지만 순동에 가깝다"며 "조선시대에 동 자체가 귀한 재료고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유물이었다"고 덧붙였다.

오 원장은 또 "이 지역은 양반도 살았겠지만 중인, 관아의 아속들이 주로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일반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들의 터인데 유물들이 그런 집 창고로 추정되는 바닥에 묻혀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자료로 더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해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물은 유적의 보존가치가 높아 학술자문회, 전문가검토회의, 문화재위원회를 거쳐 유적전시관을 조성한 후 보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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