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원님재판 무색한 군사법원

권혁철 2021. 6. 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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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구내에 있는 고등군사법원 청사. <한겨레> 자료사진

권혁철ㅣ논설위원

“군사경찰과 군검찰의 무능 및 무성의라고 본다.”

지난 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공군 성추행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냐”는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국방부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2014년 14명이 숨지거나 다친 육군 22사단 총기 사건 때도 당시 김관진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가장 큰 원인으로 가해자 임아무개 병장을 지목했다. 예나 지금이나 국방부는 구조적 문제는 애써 눈감고 개인과 군대문화에서 원인을 찾는다.

서욱 장관 말대로 공군 성추행 사건에서 군 수사기관이 무능했고 무성의했다. 꼬리 자르기, 제 식구 감싸기,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다. 이들은 왜 무능하고 무성의했을까. 나는 군 사법제도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군 생활을 오래 한 직업군인은 “수사 결과는 지휘관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현행 군 사법제도는 한마디로 ‘지휘관 사법’이다. 지휘관 사법의 고갱이는 관할관·심판관 제도다. 1심을 맡는 보통군사법원의 관할관은 보통군사법원이 설치된 부대의 지휘관이다. 법관이 아닌 일반 장교인 지휘관(관할관)이 군 검사의 구속영장 청구 승인권을 통해 강제수사 여부를 결정하고 재판관과 심판관을 임명해 재판부를 구성한다. 또 확인조치권을 통해 이미 판결이 난 형량도 3분의 1 범위 안에서 줄일 수 있다. 심판관은 법관 자격이 없는 일반 장교가 군 판사와 함께 군사법원의 재판관으로 참여하는 제도다. 지휘관은 말 잘 듣는 장교를 심판관에 임명해 자신의 뜻을 재판에 반영할 수 있다.

지휘관은 민간 사회로 치면 지방경찰청장, 지검장, 법원장을 모두 합친 제왕적 권한을 행사한다. 2010년 6월 천안함 사건 책임을 지고 이상의 합참의장이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합참의장은 징계 처분 대상자”라며 “대통령은 합참의장의 사표를 수리해선 안 되고 군형법에 따라 군사법원에서 문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0년 7월5일 이상의 합참의장은 무사히 전역했다. 군사법원법상 군사재판은 피고인과 동급 이상 지위에 있는 재판관이 맡아야 한다. 현역 군인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이 피고인이 되는 경우에는 동급 이상으로 재판부를 구성할 수 없다. 대통령도 탄핵되고 감옥에 가지만 군사법원은 합참의장을 형사처벌할 수 없는 구조다.

조선시대 고을 원님은 혼자 검사와 판사 노릇을 다 했다. 지휘관이 수사, 재판, 형 집행에 모두 개입하는 군 사법제도는 ‘원님 재판’이다. 이 제도는 3권 분립 원칙과 충돌하고 헌법이 보장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도 침해한다. 상식과는 동떨어진 군 사법제도를 따로 두는 이유는 분단 상황에서 군이 전쟁을 대비하는 특수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군의 지휘명령체계 확립, 전투력 보존과 군기 유지를 위해서다. 군 지휘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전투의 승패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기 때문에 부대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통제하려면 군 사법권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군 수사기관과 군사법원을 지휘관을 보좌하는 참모 조직으로 여긴다. 일부 군인들은 군이 특수한 전문조직이고 군사작전의 핵심 사항은 성역이기 때문에 일반적 국정 운영 시스템에서 국방 분야가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착각하면 공군 성추행 사건처럼 군 사법제도가 사건·사고의 진실을 은폐하는 도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군 사법제도가 특수한 것은 유사시 전쟁 승리를 위해서다. 그런데 2019년 보통군사법원에 들어온 사건 2839건 중 92%(2611건)가 교통사고·폭행·성범죄 등 군의 특수성과는 무관한 일반 형사범죄였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군인이 굳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따로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비상계엄과 국외 파병 시에만 군사법원을 설치하고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2016년 이후 관할관이 확인조치권을 행사한 사례가 없고 2017년 7월 이후 심판관이 재판관으로 임명된 사례도 없다. 그럼에도 군사법원 운영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없다. 평시 군사법원과 관할관·심판관 제도는 없애도 된다. 이참에 군 사법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억울한 죽음을 막아야 한다.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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