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프리즘] 이곳에 두루미 집이 있다

박경만 2021. 6. 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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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박경만ㅣ수도권데스크

“몇해 전까지만 해도 지속가능한 삶을 가늠할 수 있는 모델이 민통선이라 생각했는데, 여기마저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요. 5년 뒤 모습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20년 가까이 경기도 파주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에서 생태조사를 해온 전선희씨는 디엠제트(DMZ) 일원이 무늬만 생태로 바뀌고 있다고 개탄했다. 임진강 초평도와 강줄기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덕진산성 둘레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 숲이 잘려나간 자리에 탐방로와 주차장이 들어섰다. 생태교육의 단골 장소인 수내천은 상습 침수 방지를 위해 파주시가 148억원을 들여 콘크리트로 에워쌌다.

서부 디엠제트 생물다양성의 핵심 구간인 임진강 일원이 몸살을 앓고 있다. 논 습지는 메워지고, 산은 깎여나가 인삼밭과 비닐하우스, 축사, 과수원, 보리밭, 태양광 발전시설로 속수무책으로 바뀌고 있다. 생태계 파괴는 땅의 대부분을 소유한 외지인의 탐욕 탓이 크다. 투기 세력은 서울 등의 공사장에서 흙과 건설폐기물을 실어와 논을 돈 되는 땅으로 바꾸는데, 생태적 고민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전쟁 유산인 디엠제트 일원 땅마저 돈의 가치로 재단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요즘처럼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는 시대에 그들을 비난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디엠제트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진짜 주범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치인들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17일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주민 없는’ 주민설명회를 강행했다. 국토부는 현 정부 임기 안에 착공하려면 시간이 없다며 대안 노선을 제시한 환경부의 의견조차 무시했다. 설명회장 앞에서는 ‘사회적 합의부터 하라’는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길이 10.75㎞의 이 도로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독수리, 저어새, 수원청개구리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지인 장단반도와 백연리 들판을 왕복 4차로로 관통한다. 이 일대는 접경지역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추진하는 ‘평화경제특구’ 유력 후보지다.

정부가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주는 정책으로 논 습지 훼손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 그 결과 장단반도에만 최근 1년 새 논 31만㎡와 묵논 13만㎡가 사라졌다. 논이 사라진 곳에는 비닐하우스, 과수원, 군사시설 등이 들어섰다. 논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복토는 막을 수 없다. 논에서 밭으로, 밭에서 집으로 용도 변경을 막으려면 농민에게 생물다양성 보호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실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디엠제트 생태평화 타령이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13조2천억원을 투입해 접경지역을 한반도의 생태평화벨트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생태계 보전 대책은 없고 도보여행길, 기반시설 설치 등 개발과 활용 계획만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과 남북교류협력을 강조할수록 디엠제트 생태계는 경쟁적으로 훼손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막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생태적 가치가 높은 멸종위기종 핵심 서식지를 국가가 매입하고 국립공원, 습지보호지역 등 법정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디엠제트 접경지역 보전 종합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보전과 개발의 충돌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이다.

연천군은 지난해 임진강변을 따라 군남댐~필승교 구간을 천연기념물 보전지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민관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불편을 감수하고 두루미 서식 환경 보호에 나선 것이다. 연천 민통선은 산지의 7부 능선까지 농사지었던 땅이 버려져 생태교란종이 점령했고, 율무와 콩 재배지는 인삼밭으로 바뀌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디엠제트 일원은 1㎢당 생물종 수가 국립공원과 맞먹을 정도로 살아 있고, 생태와 평화 메시지가 어우러진 독보적인 공간이다. 디엠제트가 밀림이나 정글쯤 되는 줄 알고 왔다가 산허리까지 깎여나간 민둥산을 보고 실망해서 돌아갔다는 얘기가 더이상 나와선 안 되겠다. 5년 뒤 디엠제트 모습이 기대된다.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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