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여군 대상 성범죄, '군대라서 생기는 일'이라고요?

임재우 2021. 6. 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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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 성폭력]

김엘리 평화페미니즘연구소 소장과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이 22일 <슬랩>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슬랩 영상 갈무리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2017년까지 해병대 대위로 근무했던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군에 있던 시절 이른바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에 끌려간 적이 있다. 군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술을 나서서 마시고, 일부러 괄괄한 농담을 해왔던 방 팀장은 “여군이 분위기를 깬다”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았다. “다들 (도우미와) 한 쌍씩 노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소화기를 들고 춤을 췄거든요. 뭐라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날은 그렇게 넘겼지만, 충격은 오래갔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다 보면 이 사람들이 나를 온전한 동료로 보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거죠. 이 사람들이 여군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2020년 기준 현역 군 가운데 여군 비율은 7.4%(1만3891명). 군내 소수자인 여군은 부대에 들어가지마자 ‘어항 속 금붕어’ 신세가 된다.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고, 입길에 오른다. 부대에서는 ‘여자가 아니라 군인처럼 행동하길’ 요구받지만, 회식자리의 남성 지휘관 옆자리는 늘 ‘여군’에게 배정되어 있다. 군 밖에서는 여군을 성적 대상화하는 웹툰이 인기를 얻고, ‘국방조무사’라는 비아냥이 들린다. 방혜린 팀장은 여군의 지위를 이렇게 요약했다. “실수를 하면 여군 전체의 실수고, ‘여성은 이래서 안 돼’라는 말이 돌아와요. 반면 잘하면 ‘남군처럼 잘한다’가 되는 거예요. 군 밖에서는 ‘여군은 이래서 쓸모 없다’는 댓글이 달려요. 늘 ‘여군’이라는 과도한 대표성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죠.”

공군 성추행 부사관 사망 사건 뒤 성범죄에 대한 회유와 묵인을 부르는 군내 남성문화, 수사·기소·재판을 독점한 군대 사법시스템 등이 도마에 올랐다. 한편에서는 군대 내 조직문화만을 여군 성범죄의 원인으로 삼는 걸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군대에서만’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몰아가서는 여군 대상 성범죄가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 22일 반복되는 여군 대상 성범죄,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군을 상대로 한 성적 대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방혜린 팀장과 김엘리 평화페미니즘연구소장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 모였다. 김엘리 소장은 여군들을 심층면접해 박사논문을 쓰는 등 여군을 오래 연구해온 군대 문화 전문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젠더 미디어 <슬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아무개 중사가 안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티셔츠와 과자 등이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여군들이 군에서 여군이어서 겪는 불편함이 있다면.

방혜린 팀장(방)=여성한테만 부여되는 군인으로서 증명에 대한 요구들, 교육을 끊임없이 받는다. ‘너는 군인이지 여자가 아니다’라고. 그런데 둘은 똑같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여성은 내 성 정체성이고 군인은, 내 직업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을 남군한테는 하지 않는다. ‘너는 군인이지 남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바보 같은 말인가.

-여군이라는 이유로 진급이나 부대 배치에서 불이익을 보기도 하나?

방= 보직 자체는 2017년에 전투병과까지 다 개방됐다. 그런데 특정부서에 여군들을 몰아넣기를 한다던가, 특정 자리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편향된) 배치를 한다. 소위 말하는 출세길에 가는 자리는 따로 있다. 전략부서나 기획이나 작계라던가. 이런 데는 여군들이 비교적 배치가 안 된다. 기혼 여군들이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군이라는 조직이 당직도 많고 대기도 많지 않나. ‘너는 애 있잖아. ’하면서 (기혼 여군들이) 배제되는 것이다. 제가 군 복무할 때만 해도 육아휴직을 1년 이상 하는 선배들은 다 전역을 결의하고 쓴 거였다.

김엘리 소장(김)=여군들은 소수다 보니까 주변의 주목도 많이 받고, ‘어항 속 금붕어’처럼 사소한 것까지 주목을 받는다. 이런 주목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한 전략 중 하나가 ‘결혼을 빨리하기’다.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되면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사회가 아이를 부부가 함께 키우는 문화라기보다는 여성들의 몫으로 1차적으로 부여되는 사회지 않나. 그러다 보니 여군들이 아이를 키워야 하고, 군대에서도 일도 해야 하는 이중적 노동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웹툰 ‘뷰티풀 군바리’를 둘러싼 논란에서 알 수 있듯, 군대 밖에서도 여군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존재하는데.

김=마치 군대 내에서만 성폭력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논의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군내 성범죄는) 민간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군대는 조직문화의 특성상 성폭력이 일어나는 방식이나, 성폭력을 해결하는 방식 등이 보다 폐쇄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여성에 대한 성차별주의는 (일상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방=군대가 가지고 있는 조직문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 여성혐오와 같은 것들이 절대 군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부담하고 있는 문제다. 여군에 대한 기사를 보면 그 밑 댓글에 ‘국방조무사’라고 하거나, ‘여군은 이래서 쓸모 없다’하는 등의 댓글들이 달린다. 그런데 그 똑같은 사람들이 이번 공군 부사관 사건에서는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군내 성범죄는) 군의 조직적인 폐쇄성이나 초남성적인 사회와 맞물려서 극대화할 뿐인 것이지, 절대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과 여군에 대한) 굉장히 왜곡된 시선이 있고, 이것들을 지적하지 않는 한 군대 문제만 똑 떨어뜨려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뷰티풀 군바리> 6화 장면. 네이버 웹툰 갈무리

-수사·기소·재판 등 모든 절차를 군이 독점하는 군 사법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비군사범죄는 수사과정부터 전부 다 민간에 이양되어야 한다. 지금 나오는 정부안 등은 성범죄만 떨어뜨려서 민간에 이양한다거나 2심부터 민간 항소심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인데 이 정도로는 미진하다. 우리 사회에 3권 분립이라는 원칙이 있는데, 국방부는 행정기능을 갖고 사법 기능도 갖는 기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어떤 조직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사법정의 구현이나 성평등의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방첩이나 방산처럼 긴밀한 특수성이나 전문성이 담보될 필요가 있는 문제는 제외하고 모두 민간에서 담당해야 한다.

-반복되는 군내 성범죄가 시스템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김=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여군을 하대하거나 폄하하고, 그들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등의 일상적인 성차별이 작동하고, 그런 성차별이 성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조화된 성차별 문화와 관례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변화해야 한다.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할 것이다.

방=교육을 지금 거의 분기에 한 번씩 한다. 진급 선발에 영향을 끼치는 교육은 반기에 두 번 정도 한다.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게 다르고, 중학교에서 배우는 게 다르고,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게 다른 것처럼 인권교육이나 성인지 감수성 교육도 이 사람이 어떤 보직, 어떤 계급에 있느냐에 따라 각자 이해도가 다르다. 단계별로 학습되어야 한다. 지금은 일단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예산만 왕창 투입해서 일회성 교육만 돌리고 있다. 받는 입장에서는 똑같은 교육만 네 번 받는 셈이다. 두 번째로는 (성폭력) 상황을 목도했을 때 직접적인 피·가해자 당사자 말고 나머지 주변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전혀 안 되고 있다. 그런 상황을 목도했을 때의 행동교육들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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