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공정과 경쟁’ 깃발 올린 2030, 미래 이끌 시대 담론도 주도해야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2021. 6. 29.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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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대표가 말한 공정·경쟁은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가치
사려깊은 청년정치 가능성 보여… 중요한 건 구체적 콘텐츠
저출산·양극화·젠더갈등… 어떤 정책·제도 만들 건가

젊은 늙은이도 있다. 늙은 젊은이도 있다. 만년에 혁명의 리더가 되는 사람도 있다. 청년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도 있다. 분야에 따라, 직무에 따라 사람의 능력이 발휘되는 시기는 제각각이다.

노예로 팔려갔던 플라톤이 몸값으로 아카데미를 세웠을 땐 마흔 살이었다. 계몽주의 혁명의 이론가 칸트는 쉰일곱 살에야 ‘순수이성비판’을 출판했다. 나폴레옹은 서른 살에 공화국의 수장이 됐고, 서른다섯에 황제가 되어 10년을 통치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은 20~30대의 변방 사무라이들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쉰여섯에 독일의 통일을 이루고 일흔다섯까지 유럽의 정치를 주도했다. 레닌이 핀란드 역에 내려 볼셰비키 당원들의 환호성을 들었을 땐 마흔일곱 살이었다. 1955년생 게이츠와 잡스는 30대에 정보 혁명의 선봉에 섰다.

능력과 상관없이 늙었다고 밀쳐내면 연령 차별(ageism)이다. 능력이 모자란데 젊다고 밀어주면 실패를 자초한다. 노인이 정력적인 ‘청년 정치’를 펼친 사례도 흔히 본다. 청년이 원숙한 ‘원로 정치’를 과시한 경우도 적잖다. 젊은 정치인이 성공하려면 원로의 신중함·경험·종합력·판단력을 배워야 한다. 늙은 정치인이 치세하려면 청년의 열정·순발력·개방 정신·학습 능력을 갖춰야 한다. ‘청년 정치’와 ‘원로 정치’는 그렇게 상호보완적이다. 인류의 지혜는 청년의 총기와 중년의 전문성과 노년의 통찰이 조화롭게 융합된 결과다.

전통시대 중국의 젊은 황제 곁에는 어김없이 노회한 원로 대신들이 붙었고, 늙은 황제 곁에는 젊고 영특한 기린아들이 따랐다. 2017년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된 39세의 마크롱은 46세의 총리를 두고 평균 54.6세의 내각을 구성했다. 젊지만 능란한 그의 국정 운영은 젊은 치기가 아니라 남다른 성숙함에서 나왔다.

30대 중반의 청년이 야당 대표가 된 후, 한국 정치판에선 20~30대 표심을 잡는 싸움이 시작됐다. 명실상부 대선 전초전이다. 여야의 권력 투쟁은 흥행 쇼가 되고 있다. “너희만 젊냐, 우리도 젊다” 방식의 유치한 ‘연령 정치’다. 현명한 유권자들은 얄팍한 정치인들의 머리를 밟고 서야 한다. 이제 나이는 그만 따지고, 정책과 비전과 능력을 들여다볼 때다.

과연 누가 좋은 제도의 창안자인가? 누가 공공선의 실천가인가? 국가를 관리할 행정가인가? 법치를 실현할 헌법의 수호자인가? 국제 무대서 슬기롭게 국익을 추구할 혜안과 비전의 외교가인가? 경제 발전의 기획자인가? 국가 안보의 전략가인가? 증폭되는 사회 갈등의 조정자인가? 지역·세대·젠더·계층의 차이를 넘어서는 국민 통합의 지도자인가? 정확한 정보와 첨단의 지식에 근거한 합리적 정책의 입안자인가? 원대한 국가의 대계를 세우는 미래지향의 설계자인가?

경세와 치국의 실력을 못 갖추면 늙든 젊든 지도자 자격 없다. 내용이 빈약하면 ‘청년 정치’의 형식이 해체된다. 일시적 동원 효과만 발휘할 뿐 장기적 통치 전략이 될 순 없다. 물론 구악과 불합리, 적폐와 부조리를 일소할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20~30대의 정치 세력화가 진행 중이다. 이제 검증이 시작된다. 과연 그들은 국가 경영 능력을 갖췄는가?

가능성이 보인다. 30대 야당 대표가 “공정과 경쟁”을 외쳤다. 공정한 경쟁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며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다. 양자의 긴장 속에 자유와 평등, 사익과 공익,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담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공정한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경쟁 없는 사회는 공도동망의 감옥이다. 시대정신을 바꾸는 노련한 의제 설정이다. ‘청년 정치’가 ‘원로 정치’보다 더 사려 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아니, 원로의 지혜를 빌려 스스로의 앞길을 개척하는 청년의 힘찬 출발이다. 젊은 세대의 권리 주장이자 자립 선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원칙 없는 정책은 맹목이고, 각론 없는 총론은 공허하다. “공정과 경쟁”은 어떤 정책과 제도를 수반하는가? 저출산 고령화 대책은 무엇인가? 저성장 산업 경쟁력 약화의 탈출구는? 소득 양극화의 해결책은? 젠더 갈등의 해소책은? 바람직한 소득세율과 상속세율은? 환경 재난의 근본적 해결책은? 1987년 이후 처음 찾아온 ‘청년 정치’의 모멘트다. 논쟁과 숙의를 통해 “공정과 경쟁”의 구체적인 콘텐츠를 밝힐 때다. 20~30대가 시대의 담론을 주도해야 한다. 그들의 현실, 그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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