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각국 중앙은행들 'CBDC' 실험.. "현금 보완재 될 수 있어"
○ 카카오 등 참여 국내 첫 CBDC 모의실험
CBDC는 중앙은행만 발행할 수 있고 액면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가상화폐와는 다르다. 가상화폐는 누구나 발행할 수 있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치가 달라진다. 가상화폐의 핵심 기술인 ‘분산원장 기술’이 적용된다는 점만 같다. 분산원장은 거래 정보가 기록된 원장을 특정 기관의 중앙 서버가 아니라 공유 네트워크에 분산해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기술이다.
한은의 첫 모의실험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빅테크(대형 기술기업)가 대거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는 자회사를 통해 다음 달 12일 마감되는 입찰에 나설 예정이다.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 관계자는 “앞서 한은의 CBDC 파일럿 시스템 컨설팅 용역에 참여한 적이 있고,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중앙은행과 CBDC 플랫폼에 대해 논의하며 기술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SDS, LG CNS 등 국내 IT 서비스 기업은 물론이고 일부 시중은행도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CBDC 모의실험에 참여하면 ‘정부 사업 수행자’로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기술 활용도도 높일 수 있어 기업들의 관심이 뜨거운 것으로 풀이된다. IT 업계 관계자는 “국내 CBDC 첫 실험을 수행했다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빅테크엔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 바하마는 이미 CBDC 사용 가능
현금 사용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스웨덴 역시 지난해 2월부터 유럽 최초로 CBDC 발행 및 사용법을 점검하기 위한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하고 참여 기관들이 이를 가상 환경에서 유통시키는 1단계 테스트를 최근 마쳤다. 2단계에선 처리 속도 개선, 오프라인 지급 기능 구현 등을 중심으로 테스트를 실시할 방침이다.
미국은 CBDC 도입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올해 3분기(7∼9월) 중 미국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은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함께 개발 중인 두 개의 CBDC 프로토타입(시험 제작 원형)을 공개할 예정이다. 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미국의 CBDC ‘디지털 달러화’ 발행의 잠재적 이익과 리스크를 논의한 보고서도 곧 내놓을 계획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보고서는 섬세하고 신중한 과정이 될 CBDC의 첫 시작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CBDC를 세계 최초로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곳도 있다. 카리브해의 도서국가 바하마는 지난해 10월 개인이 소액 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CBDC ‘샌드 달러’를 도입했다. 30여 개의 도서 지역으로 이뤄진 바하마는 오프라인 금융 거래가 불편하다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사상 첫 CBDC 도입이 현실화됐다.
○ “은행 예금 위축 우려” vs “통화정책 효과 높여”
하지만 CBDC를 바라보는 금융회사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CBDC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 경제주체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는 CBDC를 보유하게 되면서 은행 예금 위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CBDC 발행 여파로 은행 예금이 크게 감소하면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가고 대출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며 “코앞에 닥친 문제는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미리 준비해 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파월 의장은 “CBDC는 현금, 은행 예금의 대체재보다는 보완재로서 이상적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CBDC 발행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술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CBDC는 마이너스 금리를 부과할 수 있어 내수를 부양할 때 통화정책의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춰도 ‘제로(0) 금리’를 보장하는 현금이 있기 때문에 금리 인하 효과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CBDC를 발행하면 실질적 금리 하한선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개인에게 직접 CBDC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헬리콥터 머니’ 정책도 손쉽게 시행할 수 있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국제적인 CBDC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CBDC 설계 단계부터 국경을 뛰어넘은 글로벌 상호 운용을 염두에 두고 CBDC 시스템 개발 및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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