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84] ‘피터 래빗’의 어머니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1. 6.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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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 배너, 베아트릭스 포터의 초상, 1938년, 캔버스에 유채, 74.9㎝x62.2㎝,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독일 출신 영국 화가 델마 배너(Delmar Banner·1896~1983)가 그린 베아트릭스 포터의 초상화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 푸르스름한 재킷을 입은 장난꾸러기 피터 래빗 이야기를 쓰고 그린 작가다. 푸근한 인상에 둥글둥글한 몸집, 푹신한 갈색 목도리를 두른 모습이 동화 속 엄마 토끼를 닮은 이 노년의 작가를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림 앞에 서면 맑은 공기가 감도는 산속에서 포터와 마주친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들 것이다.

배너와 조각가였던 아내, 그리고 포터는 영국 북서부 호수가 많은 산지인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이웃으로 만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온갖 동식물과 아름다운 풍광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으며 그 사랑을 오롯이 작품에 담았다는 것. 포터의 피터 래빗도 여기서 탄생했고, 배너는 이곳의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그림 속 포터는 작가가 아니라 대농장주이자 토종 면양인 허드윅종(種)을 전래 방식으로 방목하고 번식시켰던 유능한 목축업자다. 품평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그녀는 지금 우산과 카탈로그를 손에 쥐고 목동들이 선보이는 양들 사이를 누비고 있다. 여성 최초로 허드윅 사육협회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던 포터는 소유지 500만 평을 자연보호를 위해 설립된 단체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하고 세상을 떴다. 자식이 없던 배너와 아내는 아들 둘을 입양해 키웠고, 장애 아동과 그 가족들도 온전히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보조 시설을 완비한 휴양지를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세웠다. 이들은 말하자면 지독한 땅 사랑을 예술과 공익으로 환원한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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