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32] 외로움과 홀로움

최재천 교수 2021. 6.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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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거의 20년째 개를 기르고 있다. 아들이 어렸을 때 한사코 허리 길고 다리 짧은 닥스훈트를 기르게 해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암컷 한 마리를 데려왔다. 아내는 개를 아파트에서 기를 수 없다며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마침 새로 이사할 집에서 기다리던 닥스훈트 수컷과 운명처럼 만나 부부가 된 우리 개는 두 번에 걸쳐 새끼를 낳았고, 우리는 그렇게 열 마리 대가족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

며칠 전 그중 한 마리가 또 하늘나라로 떠나고 이제 달랑 ‘두리’라는 이름의 수컷 한 마리만 남았다. 홀로 남은 두리는 그저 아내 바라기만 하고 있다. 16년 동안 여럿이 한데 뒤엉켜 살다가 홀로 남아 겪는 외로움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듯싶다. 공연장을 가득 메웠던 관중을 떠나 보내고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마음이 그렇게 허전할 수 없다던 어느 가수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부부가 금실 좋게 살다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도 견디기 힘들지만 넓게 받은 사랑도 깊은 외로움의 골을 판다.

황동규 시인은 스스로 환해지는 외로움을 ‘홀로움’이라 부른다. “가을물 칠한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실란(蘭) 꽃을 쳐다보며 앉아 있다/ 조그맣고 투명한 개미 한 마리가 실란 줄기를/ 오르고 있다/ 흔들리면 더 오를 생각 없는 듯 멈췄다가/ 다시 타기 시작한다.” 100세인 김형석 교수님에게는 절친 두 분이 있었다. 어느 날 안병욱 교수님이 더 늦기 전에 1년에 두세 번씩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자고 제안하자 김태길 교수님이 그러다 맨 뒤에 남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냐며 정 붙이는 일일랑 하지 말자 하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인간 나이로 100세가 넘는 두리에게 나는 요즘 황동규 시인의 시도 읊조리고 김형석 교수님 얘기도 들려준다. 외로움도 스스로 선택하면 환해진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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