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칼럼] 대권주자의 덕목

박완규 2021. 6. 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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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출마 선언, 대선정국 열려
소통·국민통합 능력에 더해
미래 내다보는 통찰력 지녀야
누가 새 시대 열지 주목할 때

대선 바람이 거세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민주당의 이재명 경기지사는 7월1일 출마 선언을 예고했다. 야권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오늘 대권 도전을 선언한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어제 사의를 밝히고 국민의힘 입당과 출마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대선 정국의 막이 오른 것이다.

대권을 꿈꾸는 여야 유력 인사들이 제대로 준비돼 있는지 묻게 된다.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적 자질을 갖췄는지, 국민을 실망시킬 도덕적 결함을 지닌 건 아닌지 주시해야 할 때다. 앞으로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여론조사 추이에만 집중하다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박완규 논설실장
대권주자는 국정 운영을 이끌 만한 기본 덕목과 역량을 지녀야 한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다. 나라의 과거 잘못을 바로잡는 것도 필요하지만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새로운 가치와 철학을 토대로 삼아야 흔들림 없는 추진력을 확보하고 정치적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미국 언론인 로버트 카플란이 저서 ‘21세기 국제정치와 투키디데스’에서 “정치가에게는 결과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정치가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한 이유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과 나라의 한계를 깨달아야 한다. 카플란은 “통치자에게 필요한 속성들 가운데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기초한 겸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며, 거기에서 최선의 계책이 나오게 된다”고 했다. 그는 로마 제국이 오래 존속하도록 기반을 닦은 황제 티베리우스에 대해 “가장 큰 강점은 그가 로마의 약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소통 능력도 중요한 덕목이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을 마련했더라도 이를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면 헛수고가 된다. 변화된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 언어와 정치 문법으로 표현해야 국민의 공감을 얻어 비전을 실행하는 데 힘을 실을 수 있다. 국민 통합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실현하는 데도 소통 능력이 필요하다.

대권주자들이 이런 기본 덕목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혹독한 검증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길고도 험한 검증 과정을 견디면서 쏟아지는 의혹에 정정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검사 출신인 윤 전 총장이나 판사 출신인 최 원장은 정치 경험이 없고 선출직 공무원을 해본 적도 없지만, 출마 선언과 동시에 검증이라는 지난한 일에 직면하게 된다. 대권주자 검증은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 후보자로 치른 국회 인사청문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아테네 민회에서 시칠리아 원정군 지휘관으로 선출된 장군 니키아스는 “우리는 적대적인 이방인들 사이에 도시를 건설하러 가는 길”이라며 “상륙하는 첫날 대번에 그것을 제압하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사면초가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가정 아래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대권주자도 유사한 처지에 놓인다. 검증을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온갖 의혹에 휩쓸려 표류하게 되고 결국 그동안 갈고닦은 경륜을 펼칠 기회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출마 의사를 밝혔거나 출마 선언을 준비 중인 주자들은 자신의 국정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는 데 전념할 때다. 벌써부터 집권 경쟁에 매달려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포퓰리즘 공약만 내세운다면 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철학을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정치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국정 현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절실하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청와대 정부’에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로 전환하고, 누군가의 특수한 문제를 사회 보편의 과제로 이끄는 것은 정치가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자 공동체의 발전을 이끄는 에너지가 된다”고 했다.

대권주자들이 정치의 근본 과제를 한시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유권자들은 누가 구태 정치와 결별하고 미래 세대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지를 판단해야 한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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