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수평적 조직문화'라는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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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껍질로 포장된 구악이랄까요.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하지 들여다보면 윗선의 그 누구도 '수평적'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되죠."
중견 IT기업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씨는 사내 조직문화에 대해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씨는 "아닌 척하지만 소위 '꼰대'문화 그 자체"라며 "업계 밖 사람들을 만나면 IT기업은 조직이 수평적이라 좋겠다고들 하는데 답답할 따름"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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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껍질로 포장된 구악이랄까요.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하지 들여다보면 윗선의 그 누구도 ‘수평적’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되죠.”
‘젊은 조직’을 표방하며 수평적 문화를 강조해온 IT업계에서 연이어 ‘불공정·직장 내 괴롭힘’ 이슈가 불거지고 있다. 네이버에서는 지난달 직장갑질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카카오 역시 지난 2월 유사한 이유로 자살 소동이 벌어지면서 내부 평가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난 데 이어 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불공정·차별 논란이 이어졌다.
그간 IT업계가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조직문화를 강점으로 내세워왔기에 대중이 느끼는 충격은 크지만 해당 업계에선 예견됐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허상이라는 걸 이제야 모두가 알게 됐다거나 심지어 속 시원해하는 반응도 있다.
한 네이버 직원은 “저연차 직원들끼리는 수평적일지 몰라도 중간리더급 이상은 수직적인 상명하복식 기업문화를 원한다”며 “서로 ‘님’이라고 부르지만 위계는 선명한 이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모두가 보는 사무실 안에서 소리지르며 면박하는 상사도 있었고 회식 자리에서 술 마실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뭘까. 취재 중 만난 IT업계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수평적 시스템이 조직 내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회사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게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업계의 급성장으로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수직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문화가 생겨날 틈은 느는데 기업들은 방관으로 일관한 게 조직의 지향점과 실제 조직문화 간의 부조화를 불렀다는 의미다.
불합리한 위계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상명하복식 문화가 조직을 잠식하는 건 금방이다. 이 때문에 허울뿐인 수평적 시스템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지속적으로 혁신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IT업계를 비롯해 기업들이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 등 부조리를 잘 포착하고 개선하려는 감수성과 함께 문제 예방을 위한 철저한 관리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지 않은 채 단지 서로를 ‘님’으로 편하게 불러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헌 술을 아무리 새 부대에 담아봐야 새 술이 되지 않는다. 새 부대에 담기 전 새 술을 제대로 마련했는지부터 돌아볼 일이다.
박지원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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