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기업 합병 상장 이끄는 '스팩'..상한가만 보고 좇다간 낭패 [박동흠의 생활 속 회계이야기]
[경향신문]
주식시장에서 때아닌 스팩(SPAC) 투자 열풍이 일고 있다. 삼성스팩4호, 삼성머스트스팩5호 등 삼성증권에서 주관한 스팩 대부분 주가가 1만원을 돌파했다. 스팩이 주식시장에서 이렇게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스팩은 기업인수목적회사(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의 약자로 비상장 중소기업과 합병하기 위해 설립한 서류상 회사(Paper Company)다. 즉 스팩이 상장될 때 공모주 청약을 하거나 주식시장에서 스팩주를 매수하면 서류상 회사의 주주가 되는 것이다. 스팩이 사업을 하는 비상장 중소기업과 합병하면 스팩은 소멸되고 그 사업을 하는 회사는 상장기업이 된다. 애니팡 게임을 만든 선데이토즈나 손흥민 샴푸로 유명한 TS트릴리온 모두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주관사가 공모주 주주들로부터 투자금을 모집해서 서류상 회사인 스팩을 상장시킬 때 1주당 공모가액은 2000원으로 결정한다.
상장된 스팩은 오로지 합병을 위해 비상장 중소기업을 찾는 일만 하고 특별한 사업모델은 없다. 3년 동안 스팩의 주관사는 성공적인 합병이 이루어지도록 합병대상 법인을 물색하는데 만약 마땅한 상대가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아쉽지만 해산한다. 회사를 없앤다고 해서 스팩 주주들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는 것은 아니다. 3년치 예금이자 정도를 챙겨준다. 즉, 2000원의 스팩 주식은 3년간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다가 청산시점이 되면 주주들에게 이자 포함, 주당 2050원 정도를 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스팩은 상장하고 나서 보통 2000원선에서 주가가 움직이는 편이다. 스팩이 우량 중소기업과 합병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주가가 갑자기 오르기도 하지만 투자자보호를 위해 바로 거래정지가 되기 때문에 며칠씩 급등하기는 쉽지 않다.
비상장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상장을 통한 자본조달이 절실한데 정식 상장 절차가 너무 오래 걸리고 준비사항도 많다 보니 스팩과의 합병을 통한 빠른 상장을 원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이런 중소기업들을 지원할 목적으로 스팩 제도가 만들어졌다.
기업 간 합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 평가를 통해 산출된 합병비율이 서로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립자금 16억원에 공모자금 80억원 등 총 96억원 정도의 현금만 보유한 스팩은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공모가 대비 2배로 시작해서 상한가로 직행했고 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바람에 2000원짜리 스팩의 주가가 1만1400원이 됐다. 현금 96억원을 갖고 있는 서류상 회사의 시가총액이 548억원으로 뛴 것이다.
이럴 경우 비상장기업 입장에서 합병할 수 없다. 현금 96억원 외에 아무것도 없는 서류상 회사가 548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무엇보다 합병 비율이 너무 부담스럽다.
비슷한 기업가치로 평가받는 비상장기업의 최대주주 지분이 60%였다면 합병 후에 지분율이 30%로 떨어져서 경영권 보장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팩의 시총이 높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지분율이 희석된다.
결국 비상장기업과의 합병을 위해 만든 스팩의 개념에 충실해지려면 주가 상승분을 그대로 반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매일 상한가를 치니까 대단한 무엇인가 있나 싶어 뒤늦게 투자해서 낭패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이 벌어질 때는 무턱대고 거래에 참여하기보다는 금융상품의 기본 개념과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냉정히 구경만 하는 편이 낫다.
박동흠 |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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