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좌클릭, 사회는 우클릭..'보수 좌파'로 기우는 중남미

이윤정 기자 2021. 6. 2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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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멕시코 등 좌파 정권
성소수자·이민자에 차별적
가톨릭 신자 다수인 국가들
표심 위해 퇴행적 가치 수용

[경향신문]

페루 대통령 당선자로 유력한 페드로 카스티요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수도 리마에서 “불평등은 끝났다”며 지지자들에게 경제적 평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성소수자, 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내세운 ‘보수주의적 좌파’이기 때문이다.

페루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에 ‘핑크 타이드’(온건한 사회주의 물결)가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지속된 좌파 정권과는 결이 다르다. 기독교인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가족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포퓰리즘과 보수주의가 뒤엉킨 새로운 좌파가 중남미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다.

지난 6일 치러진 페루 대선에서 좌파 자유페루당 후보 카스티요는 우파 민중권력당 후보 게이코 후지모리(46)를 불과 4만8000표 차로 앞섰다. 그는 선거운동 내내 “이번 대선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싸움”이라고 선전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25년간 초등교사를 지낸 카스티요는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세금 인상을 비롯해 주요 산업 국유화 등을 담은 헌법 개정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카스티요는 성소수자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불법 이민자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페루 국민들이 카스티요를 지지한 건 그가 좌파여서가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빈농 출신이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독교적 시각에 입각한 사회정책이 성소수자 권리와 낙태권을 옹호하는 진보단체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중도·우파 지지층이 거의 없는 카스티요가 진보단체의 지지조차 완전히 얻지 못하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원활한 국정 운영이 힘들 수 있다고 포린폴리시는 내다봤다.

보수주의의 옷을 입은 좌파는 중남미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성별 임금 격차 등 성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듯 보였지만, 지난 3월8일 ‘여성의날’을 앞두고 자신의 집무·거주 공간인 국립궁전 주변에 3m 높이의 장벽을 쌓았다. 시위대가 몰려올 것에 대비한 것이다.

다른 중남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20년 동안 좌파 정권이 통치한 에콰도르에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낙태금지법이 있고,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동성애 혐오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민자 혐오는 극우파 정치인이 주로 쓰는 전략이지만 중남미에서는 그 반대다. 천연자원에 경제를 의존하는 중남미에서는 좌파 정권들마저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에 관해 무심한 경우가 많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중남미 지역에서 종교적 표심에 반하는 진보적 명분들은 지난 10년간 빛을 잃기 시작했다. 중남미 전문지 아메리카스쿼털리는 “중남미 좌파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점점 더 퇴행적인 사회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평등, 다양성, 개인의 자유라는 대의명분을 잃은 좌파는 결국 전통적인 정치적 우방을 잃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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