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 잡초밭에 조립식 건물.. 주민들 "이게 靑비서관 상가? 골 때린다"

남지현 기자 2021. 6. 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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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자들 "상가? 세입자 구한다는 의뢰 없었다"
주민 "강아지 산책시킬 때나 가는 곳"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상가'로 신고한 경기 광주시 송정동 조립식 건물의 28일 오후 모습. 김 전 비서관은 이 조립식 건물을 근거로 땅의 지목을 '임야'에서 값비싼 '대지(집터)'로 변경했다./남지현 기자

28일 오후 경기 광주시 송정동의 한 야산 초입. 아스팔트 도로가 끊긴 지점부터 자동차 한대가 지날 수 있는 폭의 자갈길을 십여m 따라가자 오른편에 언덕이 나타났다. 언덕을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무와 흙으로 대충 만든 계단이었다. 계단 주위, 심지어 계단 자체에도 잡초가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사람이 다녔다면 자랄 수 없는 높이였다. 계단을 다 오르자 산을 밀어버리고는 다지지도 않은 흙바닥이 다시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 조립식 건물 두 개가 간격을 두고 놓여있었다. 건물 창 너머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화장실 한 칸 외에 아무런 가구나 기자재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바닥재도 깔리지 않은 바닥엔 습기 탓에 푸르스름하게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조립식 건물을 포함한 이 땅의 주인은 전날 사퇴한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그는 2017년 전남 순천에 사는 1981년생 부동산 개발업자 김모씨로부터 이 땅을 사들였다. 그리곤 조립식 건물을 갖다놓고 ‘상가’로 등록한 뒤, 이를 근거로 ‘임야’이던 이 땅의 지목을 값이 더 나가는 ‘대지(집터)’로 변경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형적인 땅값 올리기 꼼수”라고 했다.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상가'로 신고한 경기 광주시 송정동 조립식 건물의 28일 오후 내부 모습. 김 전 비서관은 이런 조립식 건물을 상가로 신고한 뒤 이 땅의 지목을 '임야'에서 값비싼 '대지(집터)'로 변경했다./남지현 기자

주민들은 그 조립식 건물이 상가로 신고됐다는 소식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근 빌라 주민 이모(54)씨는 “산을 밀어 만든 땅이 1년 넘게 방치돼 있어 보기가 안 좋았다”며 “저런 땅에 ‘가게용 건물'이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바로 옆 111동에 사는 강모(24)씨도 “(김 전 비서관 소유 땅은) 덤프 트럭이나 공사장 인부들이나 왔다갔다 하지 일반인은 보지 못했다”며 “강아지 산책시킬 때나 올라가는 곳”이라고 했다. 그에게 “그곳에 가게용 건물이 있다”고 말하자, 그는 “골 때린다”고 했다.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상가'로 신고한 경기 광주시 송정동 조립식 건물로 가는 입구 계단의 28일 오후 모습. 김 전 비서관은 이 계단 위에 조립식 건물을 세워놓고 상가로 신고한 뒤 해당 땅의 지목을 '임야'에서 값비싼 '대지(집터)'로 변경했다./남지현 기자

김 전 비서관은 해당 땅을 ’상가'라고 신고했지만, 정작 거기서 임대료를 내고 장사를 할 사람을 물색한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다수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에 김 전 비서관이 해당 토지에 설치한 조립식 건물 상가에 들어올 세입자를 구한 적이 있냐고 물었지만, 한결같이 “그런 일 없다”는 대답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이 땅에 소매점으로 신고된 건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경기도 광주시청은 이 모든 게 적법하다는 입장이다. 시청 관계자는 “(김 전 비서관이) 2019년 1월 임야에서 대지로 지목 변경을 할 때 이미 건축 허가를 받아 준공이 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목 변경 신청을 절차대로 처리한 것”이라고 했다. 조립식 건물로도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엔 “조립식 건물을 간이창고로 사용했다면 건축 허가가 안 났겠지만 소매점으로 신고했기 때문에 건축 허가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던 걸로 보인다”며 “비싼 자재를 써서 짓든 기성품 조립식 건물을 가져다 싸게 짓든 목적 사업에 맞게만 지으면 저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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