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에 '오염된 녹색성장' .. 탄소중립기본법의 이상한 콜라보

최우리 2021. 6. 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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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기본법에
MB '녹색성장' 개념 추가 가능성
"성장 담론으로 기후위기 대응 못 해"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

“정부는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여 탄소중립기본법을 조속히 마련하겠습니다.”

지난 5월29일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칭)가 출범하는 날, 문재인 대통령은 2050년 탄소중립(탄소순배출량 0)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달 뒤인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법안소위는 탄소중립위 법적 지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실행 과정, 방법 등을 담은 법안을 전체회의에서 넘기기 전 막바지 심사를 했다. 이날 심사한 법안은 정의당 심상정·강은미, 더불어민주당 이소영·안호영·이수진(비례), 국민의힘 유의동·임이자 의원이 각각 발의한 7개 법안과 이를 통합한 대안이다. 앞서 환노위는 지난 2월 말 공청회, 4월 말 전문가 간담회 등 법안심사 절차를 차곡차곡 밟았다.

녹색성장이 살아났다

여야 쟁점은 의외로 간단하다. 법안 목적이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대체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 녹색성장법을 보완하는 성격인지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명칭은 △탈탄소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그린뉴딜정책 특별법안(심상정)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녹색전환을 위한 기본법안(강은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안(이소영) △기후위기대응법안(안호영) △기후위기 대응 및 탄소중립 이행에 관한 기본법안(이수진) △기후위기대응 기본법안(유의동)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안(임이자)이다.

이날 정부(환경부)가 환노위 전문위원실과 협의해 제시한 통합법안 이름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병기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캐치프레이즈였던 ‘녹색성장’ 개념이 추가된 것이 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는 환경법안심사소위원장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강력하게 요구한 내용이다. 임 의원은 법안심사 과정에서 한국 최초 기후위기 대응법이라 평가받는 녹색성장법 뼈대를 그대로 살려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환경단체 등은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법을 통해 4대강 사업과 원전 확대 정책 등을 추진했다며 ‘무늬만 녹색’인 법이라고 비판해 왔다.

정부가 구상한 법안은 온실가스 감축, 기후위기 적응, 정의로운 전환과 함께 녹색성장을 4대 시책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녹색성장 시책에는 △녹색경제 △녹색산업 △녹색경영 △녹색기술 △조세제도 △녹색금융 △정보통신 △순환경제가 포함됐다.

왜 녹색성장 개념이 명칭은 물론 법안 주요 내용에 포함됐을까. 문 대통령이 강조했던 법안의 신속한 통과를 위해 제1 야당 요구를 들어준 것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녹색성장 개념 속 ‘성장’ 활용도를 높게 봤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녹색성장은 국제사회에서도 통용되는 가치다. 이미 죽은 권력(이명박)때문에 좋은 개념을 사장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녹색성장 개념이 대거 포함된 정부안을 두고 국회가 법안심사 속도를 내자 기후위기비상행동 활동가 4명은 이날 오전 법안심사소위가 열리는 국회 본관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였다. 정의당·녹색당·기후위기비상행동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기후위기 외면하는 제2의 녹색성장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법안 발의에 관여한 여당 관계자는 “녹색성장이 나쁜 개념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그린워싱(녹색분칠)된 과거가 있다. 정부안 취지가 녹색성장 개념을 보완하는 것이어서 정부에 우려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10월30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 열린 \

녹색기술은 친환경일까?

정부안은 ‘탈탄소기술’ 대신 현행 녹색성장법을 따라 ‘녹색기술’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녹색기술 개념은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기후위기 장기 대처를 위한 과학기술’을 포함한다. 이런 배경에서 녹색기술에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신에너지기술’과 ‘청정생산기술’이 포함됐다. 문제는 이들 신에너지와 관련 기술이 ‘진짜 친환경’인지 논란이 있다는 점이다. 신에너지란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따라 수소나 연료전지뿐 아니라 석탄을 액화·가스화한 에너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 청정생산기술에 대한 해석도 확대될 여지가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녹색성장법을 지렛대 삼아 원자력이 주요 청정에너지로 각광받았는데, 청정생산기술이란 표현이 원자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 가능성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헌석 정의당 기후정의위원장은 “석탄과 원자력을 이용한 가스나 수소 생산도 녹색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 쪽에서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철강업의 경우 촉매로 석탄을 쓰기 때문인데,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한 수소 환원 제철 기술 같은 것을 의미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성장 담론으로는 안 돼” vs “시간 없으니 일단 통과”

탄소중립으로 가는 첫 단추부터 채우기 힘든 이유는 녹색성장 개념이 ‘오염’됐기 때문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성장법이 제정되고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가 만들어질 당시 환경·에너지 단체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렸다. 이헌석 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이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성장중심 담론,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담론 필요성을 고민해야 할 때인데 현재 논의는 이런 논의가 배제됐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이 제2의 녹색성장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성장을 해야 기후위기가 해결되는건지 따져봐야 한다. 기후정의와 녹색성장은 양립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이런 이유로 지금의 정부안에 반대한다”고 했다.

김부겸 총리가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

반면 일단 법안을 통과시켜 탄소중립 계획을 빨리 만들어가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전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이자 현재 탄소중립위원인 안병옥 호서대 융합과학기술학과 교수는 “녹색성장 개념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은 맞지만, 개발도상국을 위한 용어라는 점에서 한국의 기본법에 쓰는 것이 맞는지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명분에 사로잡혀 있으면 시급한 기후위기 대응에 속도를 낼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안 교수도 “신에너지가 재생에너지만큼 과도하게 지원받는 문제가 있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도 신에너지를 재생에너지만큼 지원하고 있지 않다. 별도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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