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타인의 집'을 들여다보는 행위"

서정원 2021. 6. 2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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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 '타인의 집' 출간 손원평 작가
이민자 혐오·부동산 문제
세대 갈등까지 다룬 단편 8편
"남의 존재를 지긋이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
소설가 손원평이 첫 소설집 `타인의 집`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문학은 시대를 초월하면서도 그것에 결박돼 있다. 보편적 가치를 얘기하는 문제의식은 언제나 당대의 특수한 사안에서 길어오기 때문이다. 60만부 넘게 팔린 장편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42)은 신작이자 첫 소설집인 '타인의 집'(창비)에서 동시대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도려낸다. '사는(live) 곳'이자 '사는(buy) 것'인 집을 다룬 표제작을 통해서다. 책에는 이를 비롯해 총 8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주인공 '시연'은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집'에 산다. 그것도 전세로 살고 있는 세입자로부터 집주인 몰래 또다시 월세를 얻어서다. 이 때문에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에서도 그는 고독을 오롯이 누리지 못한다. 임동혁의 '라 발스'와 환한 햇살과 커피를 한껏 즐기다가도 다른 세입자들이 오면 자기 공간을 4분의 1로 줄여야 하는 처지다.

또 같은 셰어하우스의 '가족'임에도 이들의 관계는 남보다 못하다.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주면 바로 항의받는 건 물론이고 계약 조건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자기 화장실도 못 쓰게 한다. 부동산으로 줄 세운 계급구조는 끝으로 갈수록 더욱 명징해진다. 28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만난 작가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며 '집'이라는 것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다"며 "오래전부터 사람들 삶을 관통해 온 주거 문제를 소설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약자들의 갈등은 비단 부동산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진다. 같이 수록된 SF 소설 '아리아드네 정원'에서는 '이민자 혐오'과 '세대 갈등'이 겹쳐 더욱 복잡한 문제가 빚어진다. 시간적 배경은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미래. 하층 계급 노인들 수용시설인 '아리아드네 정원'에 사는 '민아'는 노인복지 업무 일을 하는 이민자 청년 '유리'와 '아인'과 주기적으로 교류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들과 친분을 쌓아 가족 대행 보증 계약을 맺고, 안락사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민아의 꿈은 국내의 이민자 혐오 탓에 좌절된다. 해고당한 유리와 아인은 내국인 청년들과 함께 노인 수용시설의 폐지를 다짐한다. 이 작품은 할머니를 주제로 여러 작가들이 쓴 선집 '나의 할머니에게'에 처음 선보였다. 손원평은 '할머니' 하면 연상되는 포근한 이미지 혹은 질곡 진 삶보다 '우리 세대가 할머니가 됐을 때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제가 늙었을 때 과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질문하게 됩니다. 예상보다 더 빨라진 고령화 속도를 보다 보면 지금으로선 회의적입니다. 너무 무서운 문제인데 비해 아직 위기감은 덜하죠. 사회가 바뀌었을 때 원망과 혐오의 문제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생겨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생각의 강도에 비해 소설의 어조는 다소 완곡하다. 문학은 '이렇게 읽어주세요'라고 지시하지 않고 그저 다른 이들의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도록 하는 행위라는 게 손원평의 지론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게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위로는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문학적 질문에 대한 답은 독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는 "반드시 나서서 남을 돕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남의 존재를 지긋이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각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단편에서 부정적 의미였던 '타인의 집'은 이로써 소설 세계 전반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으로 승화한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간섭으로 치닫는 것은 명백히 경계한다. 작가의 말에서도 "획일성의 기조가 전염병의 세상하에 한층 더 두텁게 사람들을 잠식해가고 있는 것 같다"며 "대세와 다른 생각을 조금도 용납하려 하지 않는 대중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복종과 사과를 응징하듯 강요한다"고 썼다. 스스로에 대해 손원평은 "개인주의적인 자유주의를 꿈꾸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손원평에게 '작문'은 오래된 습관이다. 2001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가로 데뷔한 뒤 시나리오·평론·소설 등을 가리지 않고 써왔다. 올해 말엔 초등학생 독자들을 위한 동화책 시리즈물을 출간할 예정이다. '글쓰기'란 그에게 무엇일까. 손원평은 "일이자 취미이자 이 세상과의 연결을 담보해 주는 행위"라고 답했다.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글쓰기뿐이었답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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