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한겨레 2021. 6. 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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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부동산, 무엇이 문제인가' 연쇄기고 _4

전강수|대구가톨릭대학 교수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 2019년 기준 지디피(GDP) 대비 땅값의 배율은 4.6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같은 해 토지소유의 지니계수는 0.8을 초과했다. 지니계수가 1이 되면 완전불평등 상태를 뜻하는데, 0.8을 넘는다는 것은 토지소유의 불평등이 극심하다는 의미다. 세계은행이 발간한 한 보고서에서 1960년 무렵 한국 토지소유의 지니계수를 0.3 남짓으로 추산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상전벽해라고 해야 한다.

주택 소유는 어떨까? 주택자산 가액의 상위 10%와 하위 10%의 배율이 2018년 37.6배에서 2019년 40.9배로 올라갔으니 주택소유의 불평등도 심해지고 있다고 해야 한다. 게다가 잠재 자본이득과 임대소득을 합한 부동산 소득은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585조원, 703조원이던 것이 2018년에 926조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각 수치는 지디피 대비로 각각 34%, 38%, 49%이다. 지디피의 절반에 가까운 소득이 부동산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동산 소유가 극도로 불평등한 가운데 막대한 부동산 소득이 발생하고 있으니, 그 소득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주위에서 부동산 갭투자로 수억원 또는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면 부동산 ‘투자’가 최고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고 연예인들은 성공하면 제일 먼저 건물을 산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통계는 이 모든 소문이 사실임을 입증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불로소득 성격이 강한 부동산 소득 때문에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면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다. 땀과 노력의 결과로 격차가 발생할 때 사회는 용인하지만, 불로소득으로 불평등이 심해질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역사상 대토지 소유가 발달한 문명이 모조리 멸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에서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은 마냥 기뻐해서는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가 멸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하는데 부동산을 가지고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한국에 미래는 없다. 어떻게 하면 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할 수 있을까? 토지공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이 급선무다. 물론 현행 헌법에는 토지공개념 조항이 들어 있다. 하지만 내용이 추상적이고 애매해서 그 정신을 구현한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위헌 시비가 일어나곤 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넣을 필요가 있다.

토지공개념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무엇일까? 토지보유세를 강화해 토지를 보유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만큼 대가를 사회에 납부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9세기 후반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을 출간해 전세계를 뒤흔든 헨리 조지는 이 정책이 얼마나 정의롭고 효과적인지 명쾌하게 논증한 바 있다. 토지보유세에 대한 조세저항이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해결할 방법은 있다. 모든 토지 소유자에게서 보유세를 걷어서 세수 순증분을 모든 국민에게 엔(n)분의 1씩 나눠주는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를 도입하면 된다.

국공유지를 확대해 민간에 임대하는 공공임대제를 시행하는 것은 또 하나의 방법이다. 이는 핀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시행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국가들은 국공유지 비율을 높인 상태에서 국공유지를 민간에 임대하고 사용료를 걷어서 공공재정에 충당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국공유지 비율이 낮아서 이 제도의 전면 도입은 어렵다. 그러나 기존 국공유지와 공공택지의 주택공급에 이 방식을 적용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부가 토지임대부 주택과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에 주력하는 것인데, 이는 전적으로 정책 결정자의 의지에 달렸다.

‘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한국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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