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그런 적 있어" 이 말의 효과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1. 6. 28.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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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야... 이거 왜 이래. 짜증 나. 엄마, 이거 어떡해."

"아이고... 짜증 나겠다, 정말. 근데 엄마도 그런 적이 있어."

그때까지 계속 속상하고 억울함을 표하던 아이는 짜증을 멈추고 내 말에 물었다.

아이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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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공감해주기

"아, 뭐야... 이거 왜 이래. 짜증 나. 엄마, 이거 어떡해."

나는 재택근무, 열한 살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갑자기 짜증이 난다고 울먹이는 아이. 아이 방 옆 방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아, 또 무엇 때문에 저러는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나긋하게 물었다.

"응, 무슨 일인데?"

"아니, 엄마... 내가... 영어 수업 끝나고 숙제하고 있는데, 이게 갑자기 안 되더니 숙제한 게 날아갔어. 화면이 사라졌어."

"어머. 그게 날아갔어? 어쩌냐. 다시 해야 하는 거야?"

"응... 아 짜증 나. 거의 다 했단 말이야."

"아, 정말 짜증 나겠네."

여기서 끝났으면 아이는 아마 몇 분을 "짜증 난다, 짜증 난다" 외치며 다음 수업까지 뭉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답답했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걸 받아들이면 되는 건데 작은 일도 참지 못하고 흥분하는 아이를 세워두고 훈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꺼낸 말은 나도 의외였다. 작정하고 한 말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나온 말이었다.

"아이고... 짜증 나겠다, 정말. 근데 엄마도 그런 적이 있어."

그때까지 계속 속상하고 억울함을 표하던 아이는 짜증을 멈추고 내 말에 물었다. 엄마가 어째서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는지 잔뜩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정말? 엄마가? 엄마가 왜? 엄마도 온라인 수업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언제?"

"엄마도 일할 때 그런 적 많아. 편집하던 중에 갑자기 시스템이 다운되어서 화면이 나간 적도 있고... 그때 엄마 머릿속도 하얘졌어. 또 갑자기 인터넷이 끊겨서 날아간 적도 있고... 또 글을 쓰다가도 그랬어. 갑자기 화면이 멎거나, 저장이 안 된 적도 많고... 엄마는 일하면서 그런 일이 아주 많았어."

"그럴 때 어떻게 했어?"

"어떡하긴 다시 해야지. 안 하면 안 되니까. 엄마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검토하는 일을 하잖아. 엄마가 그 일을 안 하면 글 쓴 사람들이 어떻겠어? 글도 그렇지, 날아가도 계속 썼으니까 책도 나오고 하지 않았을까?"

아이는 크게 대꾸가 없었다. 별 말하지 않았는데 잠잠해졌다. 방금 전까지 머리 끝까지 치밀었던 짜증이 목 아래쯤 내려와 있는 듯했다. 뭐하는가 싶더니 다시 숙제를 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아이가 고맙고 기특해서 몰래 숨겨 놓은 초콜릿 하나를 가져다 아이 입에 넣어주었다. 아이 얼굴이 달처럼 환해졌다. 기분이 좀 나아졌냐고 물으니 아주 좋아졌단다. 영어 숙제가 날아간 일은 어느새 과거의 일이 되어 있었다. 겨우 초콜릿 하나에... 열한 살인데 아직 애네 싶어 나도 웃음이 났다.

아이가 기분이 안 좋을 때... 깜짝 선물 주듯 초콜릿 한 개를 줍니다. 효과가 좋아요. ⓒ최은경

책상으로 돌아와 앉으면서 나에게 속으로 '잘했어'라고 말해주었다. 아이의 짜증을 짜증으로 받아치지 않길 잘했다. 평소 같았으면 '왜 그런 걸로 짜증을 내냐', '짜증을 낸다고 날아간 숙제가 다시 돌아 오냐', '짜증 내지 말고 그럴 시간에 얼른 숙제나 해라'라고 나까지 짜증을 얹어 말해 둘의 감정이 폭발했을지 모른다. 사실 종종 이런다.

이날은 안 그랬다. 아이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지금 아이 마음이 어땠을지 알 것 같았다. 화나고 속상하고 짜증나고.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해줬을 뿐인데 아이는 스스로 짜증을 누그러뜨렸다. 신기했다. 아이든 어른이든 공감을 해주면 스스로 문제를 찾는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아이는 다시 숙제에 집중했고 나도 크게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엄마, 나 숙제 다했어. 이제 좀 쉬어도 돼?"

"그럼... 고생했어. 두 번 하느라 더 고생했으니까 두 배로 쉬어도 돼."

마치 날렵한 고양이 한 마리처럼 침대에 발라당 눕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짜증을 부릴 때, 언니를 질투하거나 떼를 쓸 때는 바로 내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이렇게 물어야겠다고. "혹시 나는 그런 적 없는가?"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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