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준석의 엘리트論

기자 2021. 6. 2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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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자유·풍요 가져다 준 엘리트”

이준석 ‘공정한 경쟁’서 주장

2000년대 엘리트, 대중에 투항

사회발전에 엘리트 역할 막대

일방 독점은 역사발전에 역행

둘 사이의 견제와 균형 바람직

“엘리트가 세상을 바꾸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봐요…우리가 엘리트주의를 욕하기 전에 지금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준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과학기술의 발전도 따지고 보면 탁월한 엘리트 과학자와 명석한 공학도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자신의 책 ‘공정한 경쟁’에서 피력한 대목이다. 필자는 그의 주장에 상당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본다. 우리 역사만 둘러봐도 얼마든지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비근한 예로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한글이 없었을 것이고, 이순신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의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공산주의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선사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경제 토대를 마련했다. 오원철 같은 엘리트 관료는 한국의 중화학공업 시대를 열었고, 전두환의 경제 참모 김재익은 1980년대 초에 이미 반도체·컴퓨터 등 전자산업 육성 방안을 내놓았다. 실업계에서는 삼성의 이병철과 현대의 정주영 등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적 속성은 상대적이다. 엘리트들 또한 내적 취약성을 안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였다. 월스트리트는 세계로부터 모여든 금융 천재들의 격전장이다. 그런데 금융위기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탐욕의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주저앉은 엘리트 집단이었다.

대중의 역할도 조명해야 마땅하다. 그들 역시 엘리트 못지않게 역사의 전환점마다 물줄기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발휘해 왔다. 인류에게 자유·평등·박애를 가져다준 프랑스 혁명은 단연 대중의 몫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렬 대치를 상징하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어떤 정치 지도자도, 어떤 엘리트 지식인도 예상치 못한 인류사의 대사건이다. 이 엄청난 역사의 바퀴를 굴린 것은 어느 날 한순간에 장벽을 향해 몰려간 독일 민중이었다. 당시 유럽 정치 엘리트들에게 독일 통일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대처 영국 총리는 겁을 집어먹은 채 소련 지도부를 향해 동독에 군대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 과거 헝가리와 체코의 민주화 운동을 탱크로 짓밟아 버린 소련군에 격렬히 비난을 퍼붓던 서방 지도자들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독일 통일은 거대한 해일만큼이나 대중의 힘을 뚜렷이 각인시켜준 계기였다. 반면 대중은 곧잘 맹목으로 치닫는다. 선각자들이 직접민주주의를 경계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대중과 엘리트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바람직할까. 서병훈 숭실대 명예교수는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 플라톤의 딜레마’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자유를 적당하게 억압했던 체제, 아니면 자유를 적절한 수준에서 허용했던 체제는 둘 다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음을 플라톤이 지적했다고 전한다. 반면, 페르시아나 아테네처럼 극단으로 치우쳤을 때는 그 결과가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도’에 가까운 플라톤의 개념은 오늘날 대중과 엘리트 간의 견제와 균형으로 치환해도 좋을 듯하다. 그런 척도에서 보자면 200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엘리트가 대중에 ‘투항한 시대’라고 규정해도 좋을 것이다. 대중은 그동안 사회의 중심을 장악한 채 엘리트들을 주변부화해버렸다. 엘리트 교육조차 심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하지만 이젠 어느 한 방향만으로 치우쳤을 때를 우려했던 플라톤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시대다. 다시금 엘리트들의 사회적 가치에 눈을 돌림으로써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도록 사회 전체가 노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 우리 역사는 수많은 엘리트의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과 리더십으로 점철돼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들의 지분은 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룩한 발전 구도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소수 엘리트의 역할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소수가 누구인지를 규명하고 그들에게 더 많은 자원과 자율성을 제공하는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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