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구긴 007의 나라..英국방부 기밀 문서, 버스 정류장서 발견

약 50쪽 분량 문건 비에 젖은 채 발견
영국군의 아프간 주둔 가능성 관련 내용도 담겨
노동당 "유출 경위 철저한 조사" 요구

50쪽에 가까운 영국 정부의 기밀 문건이 비에 젖은 채 런던 동남쪽 켄트 지방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발견됐다고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의 주요 매체들이 2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젖은 채 발견된 영국 국방부 기밀 문서. /BBC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22일 영국 런던 동남쪽 켄트 지방에 있는 한 버스 정류장. 이른 아침에 문서 더미가 정류장 뒷편에서 비에 젖은 채 발견됐다. 50쪽 가까운 파워포인트 발표 자료나 이메일 등이었다.

그중 한 문서는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의 개인 비서에게 전달될 문서였으며, 영국 정부의 기밀 문건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 이 문건을 주운 사람은 익명으로 BBC에 제보했고, 검증을 거쳐 BBC가 27일 “국방부 기밀 문서가 버스 정류장에서 발견되는 일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영국 국방부는 BBC가 보도한 문건이 내부 문서가 맞다고 시인했다. 국방부는 직원이 내부 문서를 분실했다는 자체 신고를 했으며, 그에 따라 경위를 조사하는 중이라고 했다. BBC는 “(평범한 직원이 아니라)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사무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해당 문서에는 영국 구축함 디펜더호가 흑해의 크림반도에 접근했을 때 예상되는 러시아 측의 반응이나 미국 주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철수한 뒤 영국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할 가능성 등이 담겨 있었다. 제보자가 비밀 문건을 발견한 바로 이튿날인 지난 23일 흑해에서는 실제로 디펜더호를 둘러싸고 영국 해군과 러시아 해군이 신경전을 벌이며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 일이 발생했다.

러시아는 디펜더호가 자국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하며 경고 사격을 했다고 밝혔고, 영국은 디펜더호가 러시아 영해를 침범하지도 않았고 러시아측이 경고 사격을 하지도 않았다며 진실 공방을 벌였다.

영국측은 러시아가 디펜더호를 둘러싸고 오해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BBC가 확보한 비밀 문건에 따르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영국 국방부가 디펜더호의 흑해 항해에 대해 러시아측이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대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이 기밀 문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들통난 것이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007이 예전 같지 않다”고 조롱했다.

지난 2020년 3월 영국 남부 포츠머스 군항 해역에서 촬영한 HMS 디펜더의 모습.

게다가 영국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외부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영국군이 미군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노출됐다.

영국 소셜 미디어에서는 국방부 기밀 문서가 버스 정류장에서 발견된 건 황당한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은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영국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정보 보안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분실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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