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립 피할 수 없는 한·일, 등돌리지 말고 마주할 때"

김소연 2021. 6. 28.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본 수출규제 2년
[인터뷰] 와타나베 쓰네오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국제환경
미국, 봉쇄 아닌 '중국 억제' 나서고
중국은 '무력 의존' 현상변경 시도
같은 운명 공유한 양국 협력은 필수
역사문제와 별도 '투트랙 전략' 필요
미와 동맹을 지역 안정 연결시키고
중 협조적 유도가 생존·번영 도움
국익 우선한 대화로 화해 물꼬터야

“한‧일을 둘러싼 국제환경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다. 같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는 두 나라가 서로 대립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본 외교전문가인 와타나베 쓰네오(58) 사사카와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은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2년’을 맞아 최근 진행된 <한겨레> 서면 인터뷰에서, 급변하는 국제정세 흐름 속에서 한‧일 관계를 바라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 주류 사회에서도 영향력이 큰 그는 “초강대국인 미‧중의 대립이 본격화 한 가운데 한‧일이 ‘생존‧번영‧존엄’을 지키기 위해, 두 나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한‧일 관계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뒤 한·일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등 현안에 대해 “한국이 해법을 마련하라”며 ‘선조치’를 요구하고 있어 당분간 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수출 간소화 대상) 제외 등의 문제가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와타나베 연구원은 역사문제와 별도로 한·일이 대화를 시작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일이 긴밀히 협력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지역의 안정으로 연결하고, 중국의 행동을 보다 협조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노력이 있어야 두 나라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국 견제’가 한층 공고해지고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금의 정세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미국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 이래 추진해 왔던 중국에 대한 ‘관여 정책’(중국의 경제발전을 돕고, 발전한 중국이 국제사회 규칙을 옹호하면서 민주화의 진전도 기대하는 정책)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현 바이든 정부도 공화당의 전 도널드 트럼프 정부도 공유하고 있는 초당파적 의견이다. 대중 정책은 ‘협조적 관여’에서 ‘대항적 관여’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며 이 흐름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 냉전기처럼 봉쇄정책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봉쇄가 가능하지도 않다. 중국은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등과 긴밀한 경제관계를 갖고 있다. 이를 완전히 끊어 내는 ‘디커플링’(분리)은 미국과 동맹국에 타격이 크다. 미국과 동맹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많고, 경제가 어려우면 지도자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봉쇄보다는 공정한 경쟁으로 중국의 행동을 억제하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자국이나 동맹국의 선진 기술이 중국으로 유입되더라도 의젓했다. 앞으로는 군사나 미래 경제 경쟁력에 관련된 기술은 관리하고,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재검토도 본격화된다. 또 미국은 군사적으로 상대적 우위를 유지하면서 동맹‧파트너국과 협력 관계를 강화해 중국이 일방적인 군사력 행사로 대만을 통일하려는 행위를 막을 것이다. 미국 혼자서 중국을 억제할 수 없다는 냉철한 인식이다.”

―미·일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쿼드 등 양자‧다자 외교 의제로 대만 문제가 급부상했다. 대만은 어떤 의미인가.

“대만은 국제질서 본연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만의 통일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있어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타협할 수 없는 과제다. 중국이 현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한 ‘대만 리스크’는 계속된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병합한다면 과거 제국주의 시대처럼 군사력에 의한 현상 변경이 사실상 인정되는 것이다. 대만이 중국공산당 정부의 통제 아래 있게 되면 주일·주한미군의 활동은 크게 제약된다. 반면 중국 해군은 보다 자유롭게 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미국 본토에 직접적인 위협이다. 군사적으로 미국이 약화되고, 중국이 부상하면 한·일의 독립·존엄을 유지하는데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지난 4월16일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대만 문제가 주요하게 논의됐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고 일본은 ‘중국 견제’에 최전선에 서 있는 것 같다. 경제적 의존관계 탓에 그동안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측면도 있었다.

“중국은 1970년대 갑자기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서는 해경국의 순시선을 상시적으로 침입시키는 등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 한국과도 영토 분쟁을 하고 있지만 중국처럼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움직임은 없었다. 중국이 대만을 통일한 뒤 일본을 상대로 취할 행동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전쟁 이후 자국의 독립을 위협하는 국제정세에 놓인 적이 없다. 북한도 어디까지나 미사일이나 테러 등의 우려일 뿐 일본을 침략할 수 있는 군사 능력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의 ‘생명선’인 미국에 대해서도 도전할 수 있는 군사‧경제력을 키우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주한·주일 미군이 철수할 경우 중국을 상대로 한·일이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위기감이 일본 정부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반기 중·일 관계와 비교하면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지난 2019년 중·일 정상회담에서는 “새 시대를 열자”는 인식을 공유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일본을 미국과의 창구로 혹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대중정책은 봉쇄가 아니다. 중국과 경제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군사 대립을 촉발시키지 않는 차원에서라도 필요하다. 중국도 한국과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유럽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국의 경제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 대항정책에 보조를 맞추면서 적절한 경제관계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 이어 지난 5월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어떤 지점을 주목해서 봤나.

“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위협인식, 전략관, 그리고 세계질서의 방향에 대해 합의할 수 있을지 눈여겨봤다. 훌륭하게 달성된 것 같다. 미국의 동맹국으로 또 세계의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기존 국제질서 유지를 미국과 공유했다고 본다.”

2019년 7월2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두 나라의 온도 차는 있지만 한·일에 대한 중국의 보복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현재 중국의 행동은 국제사회 규칙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보복이든 아니든 스스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일본과 한국이 미국과 거리를 둔다고 해서 중국이 적당히 하기보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만들 것이다. 어쨌든 각오와 준비가 필요하다. 중국 경제의 과도한 의존을 피하기 위한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재검토는 한일 모두 중요한 과제다.”

―2년 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 →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 →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등 역사문제가 한·일 경제, 안보까지 영향을 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지금도 한·일 관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일 정부가 국제정세의 큰 구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국민감정 차원의 좁은 인식으로 대립을 심화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본 정부의 대한국 수출규제는 이미 일본 언론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세계의 초강대국인 미·중도 스스로의 국익을 냉정하게 계산해 움직이고 있다. 한·일 갈등으로 기뻐하는 것은 중국이고, 곤란한 것은 미국이다.”

―지난해 9월 스가 총리 취임 뒤 한·일 정상회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너무 강경하다. 미·일 동맹 강화, 쿼드, 주요 7개국(G7),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등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워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일본에 한·일 관계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약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에서 한국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근시안적인데다 국제정세, 지정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정치인들이 찰나적 국민감정에 영향을 받아 제대로 된 정책을 펴지 못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생각해보자. 만약 한국이 미국과 동맹국 관계를 중단하고 중국의 영향 아래 놓인다면 대만이 중국에 통일되는 것 이상으로 일본의 안전보장 정책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켜 그런 환경을 만든다면 양국 지도자는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한·일 관계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지만 최근 2년은 상당히 심각하다. 한국에서는 왜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지, 이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여론도 있다.

“한·일이 독립된 국가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 위해 어떤 국제관계가 전제돼야 하는지 냉정하게 살핀다면 한·일 관계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일본과 한국은 지역의 안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 아니다. 초강대국인 미·중의 협조시대가 끝났고, 대항‧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일은 미국을 동맹으로 자국의 안전보장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중국은 노동력과 시장 등 경제적 측면에서 영향력이 크다. 앞으로 한·일은 미국으로부터 지역안전보장 기여에 대한 기대 증가, 대중 ‘선택적 디커플링’ 협력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일이 살아남으려면, 같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는 두 나라가 서로 대립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일이 협력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지역의 안정으로 연결하고, 중국의 행동을 보다 협조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노력이 있어야 한·일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보일 것이다.”

―한·일 사이에 핵심 현안인 역사 문제(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는 당장 해결이 어렵다. 그렇다고 한·일 관계를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제언을 한다면.

“역사문제와 별도로 협력해야 할 일을 해 나가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얘기했지만 한·일 양국을 둘러싼 국제환경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이 난국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일은 자국의 독립조차 담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일 관계가 계속 악화되면 두 나라의 장기적 이익인 아시아 지역의 안정, 그것이 가져올 경제적 번영이 희생된다. 국제정세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자국의 생존·번영·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미·중을 마주해야 하는지, 그리고 한·일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이 자국의 이익이 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두 나라가 긴밀히 대화하지 않으면 미·중에 대해서도 입지가 약화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많은 국가 지도자가 냉철한 정세 분석을 하지 못하고 그 때의 국민감정과 편협한 이익에 현혹돼 잘못된 판단을 해왔다. 일본의 20세기만 봐도 한일합방(한국강제병합), 만주사변, 중일전쟁, 진주만 공격이라는 ‘우행(어리석은 행동)의 역사'가 이어졌다. 한·일 국민이 안전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일 지도자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와타나베 쓰네오 누구?
와타나베 쓰네오

와타나베 쓰네오 수석연구원은 미‧일 정치, 외교정책 전문가다. 이력이 독특한데, 1988년 도호쿠대학 치학부를 졸업한 뒤 치과의사가 됐지만 사회과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정치학을 공부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일본의 외교안보 정책, 미‧일 관계, 아시아 안전보장 분야를 연구했다. 2005년 일본으로 돌아와 미쓰이물산전략연구소 주임연구원, 도쿄재단 정책연구 디렉터 및 수석연구원, 현재 사사카와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을 역임하고 있다. 사사카와평화재단은 일본 에이(A)급 전범 용의자 출신인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곳으로,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영향력이 상당하다. 와타나베 연구원은 일본 내 보수적인 성향의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지속적으로 한·일 관계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두 나라 모두에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본 외무성이 발행하는 <외교>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으며 저서로는 <대국의 폭주-미‧중‧러 왜 세계를 위협하는가?>, <2021년 이후의 세계질서, 국제정세를 읽는 20개의 앵글> 등이 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