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민주화 세력 모두 구시대… 옛날식 보수·진보, 수명 다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1. 6. 2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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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1월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은성수 금융위원장, 최재형 감사원장등이 있다./연합뉴스

대선을 향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후보 간 입장의 차이가 컸던 경선 일정을 원래 정해진 대로 9월 초에 진행하기로 했다. 야권에서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의 출마 선언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대선과 비교할 때 올해 유독 흥미로운 점은 야권에서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원장과 같은 당 외부 인사가 주요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정치권 밖에 있던 안철수의 지지가 높았지만, 당시 민주당 내에는 문재인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국민의힘 당내 인물에 대한 기대감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 인기 1위인 윤석열은 말할 것도 없고, 명시적으로 정치 참여에 대한 입장조차 밝히지 않은 최재형에게도 밀리고 있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몰락한 보수 정치가 그 이후에도 반성하고 개혁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또 그에 맞는 새로운 인물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탓이다. 반면, 윤석열이나 최재형이 야권 지지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 건, 우리 편이면 뭘 해도 다 괜찮다는 현 집권층의 만연한 불공정함 속에서 ‘검은 건 검고 흰 건 희다’고 말한 이들의 용기와 소신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이 되면 뭘 하겠다’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법률가 출신들에게,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요직에 임명된 인물에 대해 야당 지지자들이 높은 기대감을 갖는 건 의외의 일이다. 어쩌면 이들을 주목하게 된 더 중요한 이유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 당장 문 대통령과 ‘다툴 만한’ 인물로 보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권 교체가 절박한 야당 지지자들로서는 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이들의 모습에서 그 세력을 누를 수 있는 용기와 역량을 발견한 셈이다. 결국 이들을 야권의 대선 기대주로 만든 기반은 문 대통령이다.

야권 지지층의 이런 정서를 이해한다고 해도 ‘문재인에게 맞설 수 있다는 것’, 그게 새 대통령의 기준일 수는 없다. 2016년 말 촛불 집회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무능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표출이었고, 정권이 바뀌면 뭐라도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낳았다.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국정 운영이나 리더십 모두 이전 정부와 딱히 달라진 것도, 별로 나아진 것도 없었다.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 모두 국가 주도적, 대통령 중심적, 권위주의적 국정 운영과 소수의 측근에 의존하는 폐쇄적인 리더십을 보였다. 권력은 더 집중되었고 말할 수 없이 오만해졌지만, 부동산이나 청년 고용에서 보듯이 정책 실행에서는 무능했다.

대통령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똑같이 답답하고 무기력한 시간이 반복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간 그냥 제자리에 정체된 채 머물러 있었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적폐 청산으로 요약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의 출발점은 사실상 박근혜 정부였고 임기 내내 거기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른바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은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관계로 보였지만 이들은 모두 과거 권위주의 시대가 낳은 쌍생아(雙生兒)였던 것이다. 산업화 세력이나 민주화 세력 모두 이제는 현실 문제를 다루는 데 구시대적 존재가 되었다. 옛날식 보수가 탄핵과 함께 몰락한 것처럼, 옛날식 진보 역시 문재인 정부와 함께 그 수명을 다했다.

30대의 젊은 정치 지도자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정치권의 변화에 대해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에 대한 공감이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대한 열망이 마그마처럼 끓고 있다. 내년 대선의 승리는 과거식의 정치 문법, 누가 나오면 어느 지역, 세대, 계층에서 유리하고 불리하다는 식의 정치공학적인 계산보다 민심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변화의 요구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

그래서 야당이 권력을 되찾아오고 싶다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에서 만족감을 찾을 것이 아니라, 아예 그것을 송두리째 넘어설 수 있는 시대적 새로움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 이미 시대적 시효를 다한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대안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보수주의에 대한 야권 전체의 고민과 절실함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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