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전원생활 로망과 위협 사이

김광희 2021. 6.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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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도원 화백

화단과 담장에 올라간 담쟁이에 모기약을 치던 남편이 후다닥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말벌 집을 건드린 것이다. 손등이며 목 뒷덜미, 머리에까지 다섯 군데나 쏘여서 온몸이 볼록볼록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위기감이랄까, 목덜미에 서늘한 기운이 지나갔다. 응급실에서도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온몸이 부풀어 올라 물주머니 덩어리가 되었다. 몇 가지 주사약을 넣은 링거를 달고서도 의식을 잃고 물 밖에 튀어나온 생선처럼 파닥파닥 튀었다. 무의식 상태로 떨다가 본인도 모르게 혀를 물거나 숨이 막힐 수도 있다면서 기도에다 관을 꽂았다. 저러다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며 평소에 찾지 않던 절대자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가 절로 나왔다. 위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이 상황인가 보다. 밤을 꼴딱 새고 두 번째 링거를 다 맞을 때쯤 되니까 몸 여기저기 붉은 반점이 얼룩얼룩하게 남으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도 벌에 쏘여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이 있다. 혈압이 40대로 떨어지니 머리에 혈액 공급이 안 되어서 코에 산소 줄을 꽂고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것이다. 죽는 것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텃밭에 가면 강아지가 항상 앞서서 살피는데 하루는 밭고랑에서 뱀을 한 마리 물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물렸는지 금방 볼이 퉁퉁 부어올랐다. 죽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치료 한 번으로 나았으니 망정이지, 나대신 물린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마웠다.

사람들은 키우고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은 자식을 많이 안 낳으니 그 대신 전원생활에서 그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 전원생활은 많은 사람의 로망이 됐다. 아이를 키우는 만큼은 아니지만, 그 좋은 것을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하지만 가끔은 별일 아닌 것의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어저께도 마당에서 대문 옆 담장으로 날라리 넥타이같이 가늘고 알록알록한 뱀이 경고장 날리듯 스르륵 지나갔다. 벌이 대문 귀퉁이나 현관 천장에 터를 잡고 주인 허가도 없이 집 공사를 하고 있어 119도움으로 불법 건축물을 철거했다. 등에 콩알만 한 진드기로 피어싱을 하고 다니는 강아지에게 3, 4월부터 겨울이 올 때까지 사상충 예방약을 먹이는 것은 기본이다. 오늘도 모기 기피제를 몸에 뿌린다. 텃밭 가에 피어 있는 접시꽃 앞에서 사진 한 컷 하고 땀 흘리며 풀을 맨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에 어깨를 들썩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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