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는 중국에 한국사 공부시켰던 국가대표 지식인"

유석재 기자 2021. 6.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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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 '김정희, 국가 대표가 되다' 펴내

그를 만나러 가다가 하마터면 번호표를 뽑을 뻔했다. 추사(秋史) 김정희 연구의 대표적 전문가 중 한 사람인 박철상(54)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의 평일 직함은 광주은행 대치동지점장이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장서 1만여권을 훑는 고문헌 연구가로 변신한다. 이런 생활도 이젠 30년을 넘겨 익숙해졌다.

박철상 소장은“추사는 외래 문화를 수용해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전범(典範)과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한학자인 부친 밑에서 한문과 친숙했던 그는 전북대 경영대를 나와 은행에 들어갔지만, 한문과 고서(古書)가 주는 즐거움을 손에서 놓지는 못했다. 2002년 유홍준의 ‘완당평전’에 대해 200여건의 오류 지적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그에게는 ‘재야의 숨은 고수’란 닉네임이 붙었다. ‘고서는 박철상씨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았다.

“사실 2002년의 일이 제 인생에서도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 이후 추사 연구가로 방향을 잡은 박 소장은 금석학 연구로 계명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세한도’(2010) 등 주목할 만한 연구서를 냈다.

이제 사람들은 그가 언젠가 추사 연구서의 결정판을 내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요약본’이 최근 먼저 나왔다. 청소년용 철학서 ‘김정희, 국가 대표가 되다’(탐)이다. “출판사 제의를 받고 처음엔 막막했지만 ‘다음 세대에게 큰 힘이 된다’는 주변의 권유에 집필을 시작했죠.” 그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 인사동 고서점을 다니는 게 취미인 한 고등학생과 함께 추사의 발자취를 답사하는 형식으로 썼는데, 이 학생은 실존 인물이며 지금은 서울대 인문학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요점을 잡고 쉽게 풀어 쓴 덕에 성인 독자도 읽을 만한 추사 해설서가 됐다. 추사는 그저 글씨 잘 써서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19세기 조선 학문의 수준을 보여주는 국가 대표 연구자”라는 것이 박 소장의 설명이다. 중국 청나라 때 발전한 고증학(考證學)은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이론을 펼치는 학풍인데, 추사는 중국의 고증학 학문 수준 위에 자신의 독창적인 학문을 더해 외래 문화를 창조적으로 해석한 동아시아 대표 지식인이었다는 얘기다.

박 소장은 추사를 ‘세한도’ ‘금석학’ ‘추사체’의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했다. “추사의 학문과 사상이 주제와 기법을 통해 농축된 그림이 ‘세한도’였습니다. 실증적인 금석학 연구는 중국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사를 공부하는 계기를 만들었고요.” 그럼 추사체는 무엇이었나? “서한(西漢·전한) 시대의 글자를 복원하고 여러 서체의 특징을 가미해 자기만의 원리에 따라 쓴 고증학의 끝판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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