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언어 동화' 직접 만드는 결혼이민자들 "책으로 엄마 나라 소개 뿌듯해요"
[경향신문]
“나무나 꽃, 잎 등 자연물은 여기 계신 분들의 책 속 그림에 전부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산이 됐든, 나무가 됐든 그림을 연습하세요. 색연필, 파스텔, 물감 등 색재료에도 익숙해져야 해요. 오늘 그린 그림은 팀원과 공유하세요. 각자 잘 그리는 영역에 따라 역할을 부여할 수 있어요.”
지난 23일 서울 구로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2층 강당에서 진은아 강사(30)가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이날 수업은 동화책 속 주요 등장 캐릭터를 완성하고, 전체 내용에 맞는 스케치를 구상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서로의 그림을 비교하며 조언하고, 강사가 제시한 과제를 수행해나갔다. 이들이 쓰는 언어는 제각각이지만 이곳에 모여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같다. 바로 ‘엄마나라의 동화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구로구는 지난 4월부터 ‘이중언어 동화책 주민작가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참석자는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에서 온 결혼이민자들이다.
12명의 결혼이민자와 3명의 구로구 거주 한국인이 국적별로 팀을 3개로 나눠 책을 만들어가고 있다.
캄보디아 결혼이민자 조한나씨(37)는 한국에 온 지 11년이 됐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어느 날 저한테 이렇게 묻는 거예요. ‘엄마, 내가 다문화야? 애들이 왜 나한테 다문화라고 해?’라고요. 캄보디아 결혼이민자는 구로구에서도 많지 않아요. 대부분 베트남·중국인이 많으니까 저희는 다문화가정 중에서도 소수고요. 아이가 캄보디아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책을 만들어 엄마나라의 이야기와 문화, 풍습 등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엄마가 책도 만들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도 싶고요.”
캄보디아팀에서 한글 작업 등을 보조하며 함께 책을 만드는 황소정씨(42)는 “국적은 달라도 우리 모두는 ‘엄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서 “엄마로서 내 아이에게 책을 직접 만들어 주는 경험 자체가 소중하다”고 말했다. 황씨는 “우리 팀은 나중에 2권도 만들기로 했다”며 웃었다.
구로구의 ‘이중언어 동화책 주민작가 양성과정’은 지역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사업이다. 구로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결혼이민자 수가 가장 많다. 지난해 11월 기준 구로구 결혼이민자 수는 3209명에 달한다.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결혼이민자가 직접 자국의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구성하고, 인물 캐릭터 설정부터 각종 삽화작업에까지 직접 참여한 것은 서울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구로구 관계자는 27일 “우리 구는 다문화정책과를 ‘상호문화정책과’로 명칭을 변경하는 등 결혼이민자들이 원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상호교류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며 “이번 사업도 그 일환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4월부터 시작해온 책 제작작업은 오는 10월까지 계속된다. 동화책은 출판용책과 e북 등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각각 중국어,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동화책에 한국어, 영어가 병기되는 형태로 제작된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엄마나라 언어도 함께 소개하기 위해서다. 구로구 관계자는 “책이 완성되면 출판기념회도 열 계획”이라며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도서관에도 엄마들이 직접 만든 책이 보급된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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