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에 카이엔이 있다면 현대차엔 코나 N이 있다

김준 선임기자 2021. 6. 2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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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나 N은 앞서 나온 i30 N과 벨로스터 N의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 개발된 차량이다. SUV라 실내공간이 넓고 트렁크 용량도 크다. 사진은 강원 인제스피디움 트랙을 달리고 있는 코나 N. 현대차 제공

현대차 최초의 고성능 모델 i30 N은 2018년 출시 이후 지난 5월까지 유럽지역에서 2만7000여대가 팔렸다. 판매량이 많지 않은 고성능차량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 하지만 i30 N은 한국은 물론 ‘자동차 왕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구입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벨로스터 N은 국내 시장에 출시됐지만 디자인에서 호불호가 갈려 같은 기간 국내서 5980여대 판매되는 데 그쳤다. 고성능차량임을 감안하더라도 승차감이 딱딱해 일상 주행에 불편하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 데일리 스포츠 SUV 코나 N

i30 N과 벨로스터 N 융합 콘셉트
고성능에도 활용도 높은 SUV로

i30 N과 벨로스터 N의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 개발된 차량이 ‘코나 N’이다. 코나는 i30와 벨로스터와 달리 유럽과 미국 등 모든 글로벌 시장에 수출되고 있다. SUV라 실내공간이 넓고 트렁크 용량도 커 세단이나 해치백 모델보다 인기도 높다. 지역 확대를 통한 판매량 증대가 절실한 현대차와 ‘차박 등 야외활동이 가능한 고성능차’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비빔밥’처럼 버무려진 모델인 셈이다.

여느 N 모델처럼 코나 N은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기아 연구개발본부장 주도 아래 개발됐다. 하지만 이전 i30 N, 벨로스터 N과는 콘셉트가 사뭇 다르다. 고성능을 추구하되, SUV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개발된 차량이다. 웬만한 과속방지턱은 큰 충격 없이도 넘을 수 있고, 주부들도 쉽게 운전해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는 스포츠 SUV를 지향한 것이다. 모터스포츠의 강자 포르쉐가 생산하지만 운전이 어렵지 않고 활용성도 높은 카이엔 같은 콘셉트로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코나 N도 개발 초기에는 트랙 주행 등 스포츠 드라이빙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최초 모델은 SUV임에도 불구하고 전고(차량 높이)와 시트 포지션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그러나 비어만 본부장이 ‘해치백 같은 SUV는 필요없다’고 선언해 전고와 시트 포지션을 다시 높였고, 승차감이 좀 더 안락한 고성능 차량으로 탄생하게 됐다고 한다.

과연 코나 N은 포르쉐 카이엔이 될 수 있을까. 차량 특성이 자못 궁금해 강원 인제스피디움과 인근 국도에서 코나 N을 테스트해봤다. 코나 N은 확실히 벨로스터 N보다 부드럽다. 벨로스터 N은 아스팔트가 조금만 파인 곳을 지나도 엉덩이에 심한 충격이 온다. 또 차체가 낮아 과속방지턱 같은 곳에서는 범퍼를 긁지 않으려면 반드시 속도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코나 N은 이런 걱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콤포트 모드로 주행하면 시속 40㎞ 정도로는 웬만한 높이의 과속방지턱도 차 바닥이 긁히지 않고 통과할 수 있다. 시골 마을의 거친 콘크리트 노면이 뱉어내는 자잘한 충격도 곧잘 흡수한다. 파인 길이나 교량이 연결되면서 생긴 단차를 지나도 엉덩이가 분주하지 않다.

SUV 기반이다 보니 벨로스터 N에는 없는 험로 주행모드가 있는 것도 코나 N의 특징이다. 모래밭과 눈길, 진흙길 모드를 선택하면 각각의 노면 환경에 맞는 최적의 구동력을 타이어에 전달해준다. 여기에다 일반 기존 모델에는 없는 ‘딥 스노(Deep snow)’ 모드도 추가했다. 일반 스노 모드는 눈이 약간만 내릴 때 슬립 제어를 통해 안전한 주행을 도와주는 장치인데, 타이어가 빠지는 ‘눈밭’에서는 큰 효용이 없다. 이럴 때 딥 스노 모드가 필요하다. 이 기능은 엔진 출력과 전자식차동제한장치, 전자식자세제어가 동시에 작동해, 눈이 한 뼘 정도 쌓인 곳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한다.

캠핑 용품으로 꾸민 코나 N. 현대차 제공

■ 고성능차의 본분도 잊지 않았다

최고 출력 유지 ‘플랫 파워’ 엔진
심장 뛰게 하는 사운드의 매력은
트랙 주행에도 손색이 없어

내린천 주변 2차선 국도에서 코나 N은 암팡진 거동을 보여준다. 스티어링휠(운전대)을 돌리는 족족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차머리가 날카롭게 꺾인다. 짧은 터널을 지날 때는 ‘뱅 사운드’를 들어봤다. 스포츠 모드와 N 모드, 커스텀 모드에서 가속 페달을 90% 이상 전개해 엔진 회전수가 5000rpm 이상 올라간 상황에서 기어 단수를 높이면 특유의 시프트업 사운드가 터져나온다. 터널 내부에서 증폭된 뱅 사운드는 귓속을 거쳐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렇다. 전기차가 아무리 고성능이라한들 엔진과 배기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꿀맛’ 사운드는 내연기관 고성능차를 소유한 드라이버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코나 N도 좋은 소리를 만드는 두 가지 장치를 가졌다. 전자식 사운드 제너레이터와 가변배기 시스템이다. 사운드 제너레이터는 엔진음을 증폭시켜 실내로 보내준다. 그런데 코나 N 실내에서 듣는 엔진음은 차량 스피커에서 나오는 가짜 엔진음이 아니다. 전기모터로 실제 엔진음을 키운 소리다. 풀 악셀을 하면 터보 직분사 엔진이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며 운전자의 심장에 카랑카랑한 엔진음을 꽂는다. 배기음도 일반 모델과 다르다. 전자식 가변배기시스템은 콤포트 모드 주행 때는 나긋하지만 레이싱 트랙에 들어서면 드라이버의 오감을 자극하는 박진감 넘치는 소리를 내준다.

국도를 20㎞가량 달려본 뒤 인제스피디움으로 향했다. SUV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코나 N은 서킷에서 즐기기 위한 차가 맞았다. 트랙 주행에 최적화한 코나 N의 파워트레인과 다양한 기능은 현대차의 고성능차 개발이 ‘진심’임을 알아채게 해준다. 코나 일반 모델 중 출력이 높은 1.6ℓ 가솔린 모델은 최고출력 198마력, 최대토크는 27.0㎏·m가 나온다. 반면 코나 N에는 최고출력 280마력, 최대토크 40.0㎏·m를 내는 2.0ℓ 가솔린 직분사 터보엔진이 장착된다. 이 엔진은 터보차저 용량을 키워 벨로스터 N에 들어가는 엔진보다도 최고출력은 5마력, 최대토크는 4㎏·m가 높다.

현대차 엔진 최초로 ‘플랫 파워’ 방식을 적용한 것도 이채롭다. 일반적으로 엔진은 특정 회전수에서 최고출력을 낸 뒤에는 회전수가 높아져도 출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엔진은 레드존이 시작되는 6750rpm 부근에서도 최고출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이렇게 엔진을 손본 덕분에 코나 N은 공차중량이 100㎏ 더 나가지만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시간)이 5.5초(런치 컨트롤 사용 시)로 벨로스터 N보다 빠르다.

운전대 5시 방향에 위치한 ‘N 그린 시프트(NGS)’ 버튼을 누르면 이 엔진은 20초간 출력을 10마력 더 토해낸다. 인제스피디움 스타트라인 직선로에서 NGS 버튼을 누르고 풀가속을 하니 첫 내리막 코너 직전 브레이킹 포인트까지 시속 190~200㎞가 나왔다. 8단 습식클러치의 변속감도 맛깔스럽다. 직결감이 강하고 빠른 속도로 변속이 이뤄지지만 거칠지 않다.

■ 디지털 계기판은 아쉽다

현대차는 벨로스터 N과 i30 N을 ‘코너링 악동’이라 부른다. 그만큼 코너 공략에 능하다는 의미다.

코나 N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앞바퀴 굴림 차량은 코너를 급하게 돌면 차가 조타한 방향보다 바깥쪽으로 벗어나는 언더스티어 현상을 보인다. 하지만 코나 N은 헤어핀 같은 타이트한 코너에서도 어지간해서는 조타 라인을 벗어나지 않고, 코너를 더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느낌마저 받는다. 전자식차동제한장치(e-LSD)를 갖췄기 때문인데, 제동이 늦거나 브레이크 답력이 좀 부족해도 큰 걱정이 없다. 마치 차가 알아서 돌겠다는 듯 적극적이고 안정적으로 코너를 벗어나게 해준다. 차고가 높아 피칭(앞뒤로 쏠리는 현상)과 롤링(좌우로 쏠리는 현상)이 세단보다 심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땡빚’을 내서라도 사고 싶은 코나 N이지만 아쉬운 게 있다. 계기판. 디지털 시대에 맞춰 코나 N도 10.25인치 디지털 디스플레이 계기판을 채택했다. 엔진 회전수와 속도, 기어 단수, 엔진오일 온도 등 다양한 정보가 표시되고, 트랙을 돌 때는 랩 타임을 측정하는 기능도 갖췄다. 하지만 계기판 디스플레이를 감싸는, 베젤 역할을 하는 사출물의 형태와 질감은 실망스럽다. 시동을 걸기 전 6시 방향에 멈춰 있는 타코미터와 스피도미터 게이지, 그들을 품고 있는 두 개의 원형 실린더…. 모터스포츠 감성 가득한 벨로스터 N의 아날로그 계기판이 벌써 그립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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