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널린 지질시대 증거들..'10억년 땅덩이 역사' 자랑할 만하다 [돌이 된 생명의 역사]

이승배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장 2021. 6. 2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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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구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지질시대’라고 한다. 이를 더 세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큰 생물의 골격 또는 그들의 흔적이 등장한 약 5억4000만년 전부터를 고생대, 파충류가 번성했던 약 2억5200만년 전부터를 중생대라고 부른다. 포유류가 번성한 약 6600만년 전부터는 신생대이다. ‘대(代·era)’라는 지질시대는 ‘기(紀·period)’로 세분되는데, 고생대의 처음은 캄브리아기이다. 그래서 고생대 이전, 지구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질시대를 ‘선캄브리아 시대(pre-Cambrian)’라고 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지층의 나이와 순서에 대한 지식이 아주 오래전부터 축적된 덕분에 어떤 화석이 발견되면 그 지질시대를 알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지질시대나 화석은 남의 나라만의 얘기일까. 한국의 화석도 연구된 지 100년이 넘었고, 필자가 근무하는 지질박물관에는 한국 지질시대별 대표 화석들이 전시·보관돼 있다.

한국 지질시대의 증거는 도처에 있다. 인천 소청도에는 ‘가루를 칠한 듯 희게 보인다’ 하여 ‘분바위’로 불리는 석회암이 있다. 이 석회암은 약 10억년 전 얕은 바다에서 남세균이라는 미생물들이 광합성을 하며 한겹 한겹 쌓은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퇴적암인데, 발음하기도 힘든 이 암석 안에서 실제로 미생물의 화석이 발견됐다.

강원 남부, 충북과 경북 북부에는 고생대의 퇴적층이 두껍고 넓게 분포한다. 약 4억8000만년 전 지층에는 바다에서 살았던 수백종의 삼엽충을 비롯해 완족류(조개 사돈), 두족류, 고둥, 조개 등의 패각과 필석 등의 화석이 있다. 약 3억년 전의 지층에서는 산호, 유공충, 코노돈트 등 바다 동물과 고사리 같은 육상 식물의 화석과 석탄이 지금도 발견된다.

경상도 지역 대부분과 전라도 곳곳, 그리고 강원과 충청, 경기도 일부에서는 중생대 동안 쌓인 퇴적층이 분포한다. 과거 2억년 전후의 지층에서는 민물고기, 수서 절지동물, 곤충의 화석뿐만 아니라 고사리 등 식물의 화석과 석탄이 발견된다. 약 1억년 전의 지층에서는 특히 공룡의 발자국과 알 등이 산출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북 동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신생대 약 2000만년 전의 바다 퇴적층에서는 굴, 조개, 게, 성게, 불가사리, 물고기, 곤충, 나뭇잎 등의 화석을 찾을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약 250만년 전에 살았던 가리비와 같은 조개 화석도 있다.

이러한 단편적인 사실만으로도 과거 10억년간 한반도 땅덩이의 역사를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다. 화석은 한반도를 생생하게 지켜본 ‘살아 있는’ 증인이면서, 동시에 한반도를 만든 ‘산(産)’ 증인이기도 한 셈이다.

실제로 최소한 선캄브리아 시대 후기부터 고생대 초기까지 이 땅은 따뜻하고 얕은 바다 밑에 있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고생대 후기부터 중생대까지는 울창한 숲과 산 사이로 크고 작은 강이 호수로 흘러들던 육지였다.

신생대에는 지금의 한반도 동부에 다시 바다가 생겼는데, 이것이 바로 동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절반 정도의 크기인 에스토니아에는 고생대 후기 이후의 지층이 없으며, 한반도보다 약 1.5배 큰 일본에는 고생대 초기 이전의 지층이 없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주인공 휴 그랜트는 영국이 비록 작지만 셰익스피어, 비틀스, 해리포터 등을 배출한 위대한 나라라고 재치 있게 표현했다. 이 말의 소재를 화석으로 바꿔 한국을 표현할 수도 있을 듯하다.

“대한민국은 작지만 대단하고 신비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선캄브리아 시대의 남세균, 고생대의 삼엽충과 고사리, 중생대의 공룡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나라죠. 참, 신생대의 물고기와 나뭇잎 화석도 있군요”라고 자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승배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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