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사랑..김금희 '경애의 마음'

김지선 2021. 6. 2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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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시대의 소설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 오늘(27일) 만나볼 작품은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입니다.

참사를 겪은 이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등단 이후 주요 문학상을 휩쓴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데요.

이 시대 가장 젊은 감각으로 가장 성숙하게 인간을 끌어안는다는 평을 받는 작품, 김지선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인천 호프집 화재/1999년 10월 30일 : "4층 상가 건물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전기가 끊어진 암흑 천지에서 문이 잠겨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

["입구에서 주인 아저씨가 문 잠가놓고 못 나가게 한다고..."]

["검찰은 관리 사장 이 모 씨가 술값을 받으려고 출입문을 닫았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불이 나자 손님들이 돈을 안 내고 그냥 갈까 봐 사장이 문을 잠가 56명이 숨진 참사.

그날 이곳에서 친구들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경애'는 죄책감, 분노, 무기력함에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경애의 마음> 中 : "출입문을 두드리던 학생들은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했고 돈 내고 나가라던 사장만 자기가 아는 통로로 빠져나와 살아남았다."]

'상수' 역시 이 사건으로 유일한 친구를 잃고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갑니다.

같은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이 만나 방치했던 자신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조금씩 단단하게 채우며 연인이 되어가는 이야기.

김금희의 소설 <경애의 마음>입니다.

[김금희/소설가 : "저는 인천에서 거의 평생을 산 사람이고 이 세계의 끔찍함에 대해서 완전히 배운 듯한 당혹스러움을 느꼈어요. 내가 만약에 첫 장편을 쓴다면 그때 그 당혹스러움과 슬픔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큰 줄기는 연애담이지만, 이 시대 노동 현장 이야기이자 참사 이후의 삶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기도 합니다.

파업 과정에서 벌어진 성희롱에 항의하자 동료들은 '경애'를 불편해하고, 결국, 회사나 노조 모두 '경애'를 따돌립니다.

접대 술자리, 뒷돈을 거부하고 원칙대로 일하려 했을 뿐인 '상수'도 융통성 없고, 실적도 부진한 무능한 영업사원이 됩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아웃사이더', '루저'로 낙인찍지만, 작가는 잘못 가고 있는 건 이들이 아니라고 적습니다.

[김금희/소설가 : "그들의 능력의 한계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사회가 잘못된 구조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더러는 실패하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 상처를 개인들이 연대해서 이겨나가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원래 세상은 다 이런 거'라는 주류의 목소리에 판판이 깨져 끝내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믿는 마음까지 폐기하진 말자... 우린 조금 부스러지긴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으니 한발씩 내디디며 살아보자는 다짐과 위로가 담겼습니다.

[강지희/문학평론가 : "그 인물들을 통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가 놓치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가장 젊은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성숙하게 인간을 끌어안는 작가라고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등단 이후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많은 독자의 지지를 받는 이 젊은 작가의 앞으로의 10년, 20년이 더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KBS 뉴스 김지선입니다.

촬영기자:조승연 박장빈 배정철/그래픽:한종헌 박세실/장소협조:이음피움 봉제역사관

김지선 기자 (3rdli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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