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날짜별로 보는 '작은' 사건들

박영서 2021. 6. 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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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월 7일, 남산 기슭에 있던 조선총독부가 새로 지은 청사로 이전했다.

일제는 청사를 지으면서 경복궁 전각들을 헐어버렸고 그 자리에 잔디를 심었다.

원래 한국인에게 잔디는 '죽은 사람의 집'인 무덤에만 심는 풀이었다.

일제는 그렇게 경복궁을 경복궁이되 경복궁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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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깊다 1·2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펴냄

1927년 1월 7일, 남산 기슭에 있던 조선총독부가 새로 지은 청사로 이전했다. 일제는 청사를 지으면서 경복궁 전각들을 헐어버렸고 그 자리에 잔디를 심었다. 잔디밭은 한국 궁궐의 이미지를 변환하기 위한 장치였다. 원래 한국인에게 잔디는 '죽은 사람의 집'인 무덤에만 심는 풀이었다. 산 사람이 사는 집에 잔디를 심는 것은 '경을 칠' 일이었다. 잔디를 보면 바로 무덤을 떠올렸던 당시 한국인들의 의식 안에서 궁궐 안의 잔디밭은 곧바로 '왕조의 죽음'과 연결되었다. 일제는 그렇게 경복궁을 경복궁이되 경복궁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세월이 흘러 잔디에서 무덤을 연상하던 문화는 소멸되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잔디 사랑'은 끝이 없다.

1월 7일은 '3월 1일', '8월 15일'과는 달리 그렇게 역사적 의미를 지난 날은 아니다. 책은 이처럼 무의미한 듯한 '날'들의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들을 되살리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곱씹는다. 책은 19세기 후반 개화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1~12월 중에 일어났던 일 가운데 흥미로우면서 의미가 담겨있는 것들을 골라 날짜 별로 탐사하고 있다. 고종의 국장, 만민공동회 개최, 대한제국 선포 등 굵직한 역사뿐 아니라 민속놀이인 돌싸움을 구경하다 살인하게 된 외국인, 종로경찰서의 어린이 행상 단속, 일제가 '방아타령'과 '춘향가' 공연을 방탕하고 음란하다고 금지시킨 것, 동대문 근처 광희정 수건 공장 총파업, 상수도 준공에 따른 물장사들의 손해배상 요구, 남대문 안 수각다리 아래 소굴을 둔 거지 두목의 '통 큰 포부' 등 역사교과서에선 볼 수 없는 날짜별 '저널'이 담겨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1, 2권을 통해 멀게는 100년전의 역사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저자는 기존의 역사 책이 겉만 핥거나 미처 다루지 못한 사건들의 전후좌우 배경과 전개, 현재의 비슷한 사건들에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역사적 교훈까지 잡아낸다. 성찰의 재료로 삼을 만한 지난 일들에 의견을 덧붙여 독자들에게 생각힐 수 있는 기회를 준다. 100여년이 흘렀건만 역사의 시계바늘은 그대로다. 책은 과거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늘과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상식을 새삼스레 일깨우면서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촉구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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