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권력의지 넘어 시대정신 담아내야

정승훈 2021. 6. 2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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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어서 말해보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말이야?"

2013년 9월 개봉한 영화 '관상'에서는 수양대군(이정재 역)이 관상가 김내경(송강호 역)에게 자신의 운명을 묻는다. 영화에서 왕이 될 상이란 '피를 마다하지 않는' 강한 권력의지가 나타난 얼굴을 말한다. 그래서 역적의 상이기도 하다.. 실제 수양대군은 좌의정 김종서 등 자신의 행로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며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았다. 관상가 김내경의 눈에는 수양대군이 잔혹하면서 냉혈한 한 마리 이리의 모습이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가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여·야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이번 주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출마 선언과 최재형 감사원장의 사퇴가 전망되는 등 굵직한 정치뉴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홍준표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야권의 대통령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경선연기 논란을 지난주 매듭짓고 오는 28~30일 사흘간 당내 대선후보자 선출을 위한 예비후보 등록을 받는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총리, 정세균 전 총리, 박용진 의원, 추미애 전 법무장관 등이 이미 출마의 기치를 올렸다. 민주당은 당내경선을 통해 오는 9월 10일 이전에 대통령 후보를 결정지을 예정이다.

대통령 후보는 강한 권력의지와 조직력, 시대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후보자는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본인과 가족에 대한 각종 흑색선전에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권력의지를 지녀야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되거나, 제1야당 국민의힘 후보가 된다는 것은 전국적 조직력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시대정신(Zeitgeist)은 동시대를 관통하는 생각과 철학을 뜻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대정신은 통치자를 뽑는 피통치자들의 염원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언급했던 '별의 순간'은 독일어 Stern(별)+stunde(시간)의 합성어로 개인의 운명과 시대정신이 맞닿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시대정신은 민심의 반영이지만, 그렇다고 일시적 인기나 유행 자체가 시대정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즘 시대정신으로는 거론되는 '공정'과 '젊음'은 바로 청와대와 민주당이 보인 행태에 대한 반발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 86세대들이 보여준 위선과 내로남불, 책임지지 않는 변명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인기는 바로 반(反)문재인 정서에 바탕을 둔다. 윤 전 총장은 정치권과 거리감은 있었으나 그렇다고 권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지난 27년간 '검찰 권력'을 누려왔다. 그런 그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 우선 꼽히는 것은 청와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정권 수사를 강행해왔기 때문이다.

최재형 감사원장도 비슷하다. 판사 출신답게 편파적이지 않고 원칙에 따르고 있다는 그 이유로 잠재적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말하자면 윤석열과 최재형은 문재인 정부에서 부족한 '공정'의 가치를 메우는 존재들이다.

여권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인기가 단연 높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절반 지지하고, 절반 반대하는 반(半)문재인 행보를 보여왔다. 문재인 정부와 차별점을 두지 않았던 이낙연·정세균 전임 총리들의 인기는 각 15%와 5% 내외에 머물지만 이 지사의 지지율은 25~30%에 달한다. 여권 지지자들은 이 지사의 행정 능력에 주목하고 있다. 이 지사라면 문 정부처럼 부동산 정책을 25번이나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세상은 문재인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갈망하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오는 29일 시대정신을 담은 미래비전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단지 권력의지를 강조하거나 '윤석열 X파일' 해명에만 급급하다면 국민 기대감은 실망으로 변할 것이다. 이번 주 예비등록하는 민주당 후보들 역시 낡은 과거 정책의 재탕이 아니라, 새 시대를 꿰뚫는 시대정신을 정책으로 엮어내야 한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상가 김내경은 한명회(김의성 역)를 만난다. 그는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보았지 바람을 보지 못했소.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인데 말이오"라고 말한다. 파도가 아니라 바람을 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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