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쪽, 성추행 결심공판서 "안희정·박원순과 다르다"고 한 이유

임재우 2021. 6. 2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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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결심공판서 오거돈 1시간30분 걸쳐 변론
"강제추행 아닌 기습추행"부터 "경미한 치매" 주장까지
대법원 판례는 "기습추행도 강제추행에 해당 가능"
법조계에서는 "최후의 수단이라도 너무 나간 주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부산지방법원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의 범죄는) 사전에 의도하지 않았고 우연한 기회에 우발적, 충동적으로 짧게 이루어진 것이다. 통상 권력형 성범죄라고 한다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이 해당할 텐데, 그것과 내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권력형 성범죄가 아니다.”(오거돈 전 부산시장 변호인)

지난 21일 부산지법 형사6부(재판장 류승우)의 심리로 열린 오거돈 전 부산시장 결심 공판. 피해자 변호인의 진술과 검찰의 구형(징역 7년)이 20여분 만에 끝난 뒤, 피고인인 오 전 부시장 쪽 변호인은 1시간30 여분에 걸쳐 ‘최종 변론’을 이어갔다. 비공개 재판 기간 대부분의 사실관계를 인정했다고만 알려졌던 오 전 시장 쪽의 변론 전략이 공개된 순간이다.

오 전 시장 쪽의 변론 전략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에 맞지 않을뿐더러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충동적이고 일회성으로 발생한 기습추행’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지위 차이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오 전 시장이 재직 중에 치매 증상을 보였다는 ‘읍소 전략’까지 폈기 때문이다. 오 전 시장 쪽 변호에는 ‘법무법인 부산’의 변호사 등이 여럿 참여했다. 법무법인 부산은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속해있던 곳이다.

오거돈 쪽 “강제추행 아닌 기습추행…권력형 성범죄 아니다”

이날 오 전 시장 쪽이 편 주장의 핵심은 ‘기습추행’이다. 오 전 시장 쪽 변호인은 결심공판에서 오 전 시장의 행동이 계획적으로 일어난 ‘강제추행’이 아닌 우발적이고 충동적으로 일어난 ‘기습추행’에 해당한다고 지속해서 강조했다.

“우발적이고 일회적이고 짧은 시간 안에 종료된 기습추행이다.”
“사전에 의도하지 않았고 우연한 기회에 우발적, 충동적으로 짧게 이루어진 것이다.”

‘충동적 기습추행’이라는 주장은 오 전 시장과 부하직원이었던 피해자 사이의 지위 차이는 ‘없었다’는 변론으로 이어졌다.

“시장직이라고 권력형 성범죄가 아니다…기습추행 사건은 그냥 기습적으로 이루어진다. 부하가 상사에게 그럴 수도 있고, 모르는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 지위나 권세에 관계없이 이루어진다.”

계획 없이 불쑥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부산시 행정조직의 정점에 있는 부산시장이고 피해자가 조직에서 말단에 해당하는 직원이었다 하더라도 ‘권력형 성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수개월에 걸쳐 일어난 ‘안희정·박원순’의 권력형 성범죄와는 다르다는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됐다.

대법원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 행사면 기습추행도 강제추행에 해당”

오 전 시장 쪽이 ‘기습추행’을 강조한 배경에는 형법 298조가 ‘강제추행’을 문구상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한 추행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폭행·협박 없이 불쑥 이뤄진 추행을 ‘강제추행’으로 보고 처벌하는 게 법리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다 형량이 센 강제추행치상죄(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강제추행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판례에 따르면 심각한 폭행이나 협박을 동반하지 않는 기습추행도 강제추행으로 처벌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하는 행위뿐 아니라, “폭행 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기습추행”은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법원 형사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가 가맹원 직원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미용업체 대표에게 무죄가 선고된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례가 그런 경우다. 이 사건 2심을 맡은 창원지법 형사1부(재판장 류기인)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진 행위가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정도의 유형력 행사라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기습추행’ 역시 강제추행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 행사가 있다면 그 힘의 대소 강약을 불문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추행이 한 차례에 그친 것이 아니라 복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비슷한 양태로 반복된 것도 오 전 시장 쪽의 ‘기습추행’ 주장을 궁색하게 하는 지점이다.

오 전 시장은 2018년 11월과 12월 부산시 직원 ㄱ씨를 추행하거나 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 지난해 4월에 또 다른 직원 ㄴ씨를 추행하고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날 변론에서 “(두 사건의) 범행시간, 장소, 피해자 반응 등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회성·우발성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피해자를 지원 중인 부산성폭력상담소 역시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밝힐 수 없으나, 피해는 그 날 하루 동안 다수였고 기습추행은 물론 명백한 폭행을 동반한 추행이 분명히 존재했으며 이는 오거돈 쪽도 인정한 부분”이라며 “(오 전 시장 쪽이) 이야기한 일회성, 기습은 실제 행위 앙태와 명백하게 다르다”고 밝혔다.

“경미한 치매 진단받았다”…법조계 “나가도 너무 나간 전략”

오 전 시장 쪽은 이날 “70세가 넘는 구세대로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노인” 등의 표현을 써가며 ‘읍소 전략’을 폈다. 피해자가 오 전 시장과의 합의를 거부하는 것이 피해자 지원단체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피해자의 ‘용서’를 권유하기도 했다.

“지금 피고인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노인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피고인이 증오의 대상이지만, 피고인은 현재 모든 걸 다 내려놓은 힘 없는 노인이다. 다 잃은 노인을 엄벌한다고 해서 마음이 편안하겠나. 오히려 용서한다고 하면 피해자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나아가 오 전 시장 쪽은 오 전 시장이 부산시장으로 재직 중일 때부터 치매 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까지 폈다.

“피고인은 시장직 취임 이후 항간에 ‘치매가 아니냐. 이유 없이 자주 화를 낸다. 자주 잊어버린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병약해 보이는 정황이 있다. 공무원 진술로 정황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다. 피고인은 경도의 인지장애, 상세 불명의 경미한 치매, 우울 스펙트럼, 죄책감 등 전문가 진단을 받은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오 전 시장 쪽의 변론 전략이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많다. 성범죄 피해자 변호 경력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조금이라도 형량을 줄이기 위해 치매까지 주장했을 수 있다”며 “최근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데 막무가내로 권력형 성범죄의 성격을 부인하는 전략이 효과적일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강제추행치상 등에 대한 법리적 다툼의 영역을 넘어, 치매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변호인 쪽도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으로 보인다”며 “치매는 최후의 수단으로 보더라도 나가도 너무 나간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는 결심공판 직후 “참담하다”는 입장을 냈다. 피해자는 “사건 직전까지도 ’법을 고쳐서라도 엔(N)선까지 하겠다’며 떠들고 팔굽혀펴기로 체력을 과시하더니, 사건 후에 갑자기 치매에 걸리셨나?”라며 “모든 죄를 인정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아달라. 제 요구는 이것이 전부”라고 밝혔다.

오 전 시장에 대한 1심 선고 재판은 오는 29일 열릴 예정이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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