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교수만 뽑습니다"..국공립대 여성할당제의 그늘

김형주 2021. 6. 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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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할당제 실시하는 국공립대
현재 전임교원 비율 17.9%
2030년까지 25%로 올려야
여성만 채용하는 대학 늘어
남성 연구자 기회 자체 박탈
국공립대 여성 교수 비율을 25%로 끌어올리는 '여성 교수 할당제'를 두고 교수 지망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여성 교수 비율이 25%를 크게 밑도는 상황에서 할당제를 실시하면 남성 연구자의 교수 임용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27일 학계에 따르면 대학원생·연구자·교수 커뮤니티인 '하이브레인넷' 등에서 여성 교수 할당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논문, 실무 경력 등 객관적 실적이 아닌 다른 요소로 임용이 결정되는 게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영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고 있는 A씨는 "현재 교수를 지망하는 세대는 성별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교육을 받아왔다고 생각한다"며 "여성 연구자가 늘어나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정부가 숫자를 정해 기계적으로 할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교육부는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해 국공립대 교원 중 특정 성별이 4분의 3을 초과하지 못하게 하고, 2030년까지 여성 교수 비율을 25%로 올린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같은 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서울대도 여성 교수 비율을 끌어올리기로 결정했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공립대 여성 전임교원 비율은 17.9%다.

이에 따라 실제로 여성만 교수로 채용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립대는 교수 8명을 여성에 한해 뽑는다는 초빙 공고를 냈다. 충북대는 4월에 3개 과에서, 경북대는 4월에 1개 과에서, 한국체육대는 2020년 4월 1개 과에서 여성만 교수로 뽑는다는 공고를 냈다. 전남대는 올해 3월에 낸 채용 공고에서 여성 지원자를 우대한다고 명시했다. 박사 엔지니어인 B씨는 "할당제 전에도 여성만 지원할 수 있다는 교수 초빙 공고는 종종 있었다"며 "여성 학자를 뽑으라는 압력이 현재 더 늘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 연구자들은 여성 교수 할당제로 연구 실적과 경력 기준이 미달인 사람도 교수로 채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B씨는 "분야마다 다르지만 최근에는 남성 연구자에 비해 양적·질적으로 낮은 연구 실적으로 임용되는 여성 교수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박사 연구원인 C씨는 "많지 않은 여성 연구자 중에서도 뛰어난 연구자가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교수가 되니 말이 나오는 것"이라며 "교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얻을 수 있는 교수직을 실적이 아닌 성별에 따라 분배하면 대학 연구 성과가 떨어진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A씨는 "교수는 그룹 리더로서 연구의 큰 방향을 결정하고 능력에 따라 예산과 장비를 따올 수 있다"며 "실적이 아닌 할당제로 교수를 뽑으면 연구 수준이 내려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성 전임교원 비율이 34%일 정도로 이미 실력을 갖춘 여교수 후보군이 넓은 인문대 같은 단과대학을 중심으로 여교수 채용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높아 해당 전공 분야의 남성 교수 후보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할당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여성에게 불리한 유리천장이 학계에도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인 D씨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일부 나이 많은 교수들은 여성 교수를 불편하게 생각했다"며 "교수 임용에서 여성이 불리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학 내 성평등 문화 확산과 다양성 확대도 근거로 제시된다. 국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E씨는 "지금처럼 학계 구성원 대다수가 남성이라면 여성 학자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년 연구자들은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이 학계에 존재했다면 그동안 특혜를 받아온 기성 남자 교수들이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혜택을 받지 않은 젊은 남성들이 희생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대학원생 F씨는 "양보해야 한다면 철밥통을 쥐고 연구와 교육을 등한시하는 586 교수들이 하는 게 맞는다"고 지적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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