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미드나이트', 말할 수 없는 이들..폭력에 저항하다

서정원 2021. 6. 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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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마의 청각장애인 추격기
'말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이다. 상사가 일방적으로 말할 때 부하는 참으며 들을 수밖에 없는가 하면,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은 십중팔구 "나서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며 핍박받는다. 저명한 탈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은 저작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통해 여성·이주민 등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서발턴'(하위 주체)들이 말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미드나이트'는 좀 다르다. 들을 수도 없고, 소리 내 말할 수도 없는 청각장애인 '경미'(진기주)가 주인공으로서 극을 이끈다. 수어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경미는 어느 날 엄마와 함께 퇴근하던 중 범죄에 휘말린다. 연쇄살인범 '도식'(위하준)에게 납치당해 피를 흘리고 있는 '소정'(김혜윤)을 목격한 것. 경미는 소정을 구출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이내 도식의 먹잇감이 돼 버린다. 엄마(길해연)조차도 청각장애인이라 극히 불리한 상황 속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들을 수 없다는 악조건은 사사건건 생존을 어렵게 한다. 발자국 소리 하나 들리지 않으니 범인이 어디서 오는지조차 감을 잡기 어렵다. 영화 소리도 윙윙거리며 관객도 이를 추체험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들을 수 없어서 말할 수도 없다는 것. 남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들을 수 있어야 자기도 알아듣게 말할 수 있는데 이들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말하고 싶어도 입에서 나오는 건 웅얼거림뿐. 경찰과 행인들 사이에서 눈 뜨고 범인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들리지 않는 대신 보이는 것은 더욱 명료해진다. 경미와 엄마는 망연자실하지 않고 나름의 수단을 동원해 도식에게 맞선다. 경미의 차와 집 안에는 소리 감지기들이 가득하다. 청각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는 도구다. 이것들을 알맞게 활용해 몇 번이나 살인범을 따돌리고 반격에 나선다. 못하는 구어(口語)는 수어(手語)로 대체한다. 경찰이 수어를 알아듣지 못해 곤란을 겪지만 마찬가지로 범인도 수어를 알아듣지 못해 범인의 눈앞에서도 경미는 엄마와 소통하며 탈출을 모색한다.

지난 16일 개봉해 인기를 끌고 있는 스릴러 '콰이어트 플레이스2'와 여러 결에서 겹쳐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두 영화 모두 청각장애를 앓는 인물들이 악에 대항한다. 고요와 굉음의 명징한 대비도 공통점이다. 미드나이트 역시 숨죽이고 감상할수록 영화의 고갱이를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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