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각 한류 바람이 불 때가 됐다"

전지현 2021. 6. 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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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 선두주자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의 꿈
14년째 조각가 물심양면 지원
내년 英아트페어 국내 개최
한강공원에 조각축제 열것
양주 군부대 조각전 펼치고
1세대 조각가 책 출간도
"미술·국악·詩 등 문화경영이
예술 같은 과자 비결이죠"
김성복 조각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포즈를 따라하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14년째 물심양면으로 조각가들을 지원해온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76)의 최종 목표는 '한국 조각의 세계화'다.

내년 10월 세계 3대 아트페어인 영국 프리즈가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공동으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였다. 세계적 갤러리들이 한국에 올 때 국내 조각가들을 알리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바로 서울 강서구에서 광나루까지 한강 공원 11곳에 조각 300여 점을 전시하는 것이다.

먼저 올해 9~10월 전시를 하면서 경험을 쌓은 후 내년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에 제대로 열 계획이다. 2004년 '창신제'를 시작으로 꾸준히 열어온 국악 공연도 함께 한강 공원에서 펼친다.

지난 25일 서울 남산 인근 식당에서 만난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환갑이 됐는데도 투잡을 뛰는 조각가들이 많을 정도로 국내 미술 시장이 열악하다"며 "나도 나이가 먹어가니까 이번에 '확' 밀어줘야 한다. 열정 있는 조각가들과 함께 K조각 한류 꿈을 이루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강 공원 조각 전시는 올 초부터 중견 조각가 50명을 만나 구상한 '글로벌 K조각 프로젝트' 일환이다. 세계 미술 시장 연구는 오랫동안 꾸준히 해왔다. 2007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크라운해태 송추 아트밸리 인근 모텔 10여 개를 인수·개조해 작업실을 제공한 후 조각가들과 함께 스위스 바젤과 중국 상하이, 홍콩 아트페어 등을 다니면서 세계 미술 시장 흐름을 공부해왔다.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기간에 집을 빌려놓고 조각가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갤러리 대표들과 만나게 해줬어요. 송추 아트밸리 입주 작가가 20명이고 그곳을 거친 졸업 작가가 20명인데 이제 꽃을 피울 때가 됐어요. K팝과 K스포츠가 한류를 일으켰듯이 조각도 떠야죠. 금년 들어 저녁마다 조각가들을 만나 '조각계 박세리, 싸이가 되라'고 이야기 중이에요."

윤 회장은 '글로벌 K조각 프로젝트' 첫걸음으로 현대조각 개척자 6인의 생애와 예술관을 기록한 책 '한국현대조각 1세대展'을 펴냈다. 국내 최초 여류 조각가 윤영자를 비롯해 백문기, 민복진, 전뢰진, 이승택, 최종태 등 원로 조각가들의 예술 열정이 오롯이 담긴 책이다. 미술평론가 최태만 국민대 교수와 시인이자 전기 작가 이웅규 백석대 교수가 2009년 크라운해태 연수원에서 열린 원로 조각가 6인의 강연과 토론 등을 토대로 출간했다.

윤 회장은 "원로 작가들의 작품은 유물이 아니라 한국 조각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지난 역사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으로 한국 조각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K조각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책 출간을 계기로 지난 25일 서울 성신여대에서 한국 조각의 세계적 위상을 높일 방안을 찾는 '제1차 K-조각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지난 21일 장흥면 옛 군부대 주둔지에서는 중견 조각가들 대형 작품 70여 점으로 야외조각 전시회 '2021 양주조각가협회 창립전'을 개막했다. 오는 8월 20일까지 민성호, 전강옥, 최은정, 이민수, 신동희 등이 작품을 펼친다.

윤 회장은 이번 조각전을 빛내기 위해 지난달 조형아트페어에서 높이 3m 김성복 조각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와 높이 5m 권치규 조각 '이수목(Circulation)'을 구입했다. 이번 전시작 중에 조각가들의 인기 투표 1위에 오른 최승애 작품 '별'도 사들였다. 그동안 특정 조각가를 밀어준다는 구설에 휘말릴까봐 작품 구입을 꺼렸지만 작가들의 추천작을 구입하면서 지원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원에 조각을 대여하는 야외 전시회 '견생조각전(見生彫刻展)'도 2016년 10월 서울광장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52회 진행해왔다. 현재 고양 어울림누리 야외광장, 전남 곡성군 곡성천 뚝방,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장도 야외 일원 등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언택트 시대 차 안에서 감상하는 '드라이브 스루 견생조각작품전'도 장흥자연휴양림 일대에서 열고 있다.

"지자체에서 대여료를 받아 작가들에게 주고, 작품 운송 설치는 우리 회사가 합니다. 공원 전시가 끝나면 주민들이 '작품이 왜 없어졌느냐'고 민원을 제기할 정도로 반응이 좋아요. 세브란스병원 조각 전시를 본 관객들이 생기가 돈다고 해서 견생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견물생심(見物生心)', 즉 작품을 보면 사고 싶다는 뜻도 되더군요."

그는 2017년 여름 서울 광화문광장에 눈조각 축제를 열고, 2012~2013년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윤 회장은 "14년간 얽히고 얽혀 나도 모르게 조각인이 됐다"며 "조각가는 아니고 조각가 편을 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락음국악단을 창단하고 직원들 시집을 내는 등 문화예술경영 선두주자로 꼽힌다.

"크라운과 해태 합병 후 동문수학(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배움)을 하면 임직원 화합이 빨리 될 것 같아서 화가와 시인을 불러 아카데미를 열었어요. 직원들이 판소리와 눈조각, 시를 배우면서 창조성을 체득합니다. 예술 같은 과자를 만드는 비결이죠."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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