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창 대신 박수와 '내적 환호'로..1년 8개월 만에 열린 야외 음악축제

고경석 2021. 6. 2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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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음악 축제 '뷰티풀 민트 라이프'에서 관객들이 가수 정준일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고경석 기자

“와! 정말 할 말을 잃을 것 같아요. (공연장의) 녹색 잔디를 보자마자 숨겨 있던 기억이 터져 나오면서 세포들이 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아, 이런 무대가 있었지. 한 달 내내 오늘만 기다렸어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야외 음악 축제 ‘뷰티풀 민트 라이프’ 첫날 공연 마지막 무대에 오른 가수 폴 킴은 감격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는 말을 줄이라는 스태프의 수신호에도 “너무나 값진 순간”이라며 공연 주최사 측과 관객에게 거듭 감사를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1년 넘게 중단됐던 야외 음악 축제가 열렸다. 2019년 10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이후 1년 8개월 만에 열린 야외 대중음악 공연이다. 방역 당국이 대중음악 공연 최대 관객 수를 기존 99명에서 4,000명까지 늘린 뒤 열린 첫 번째 대형 공연이기도 했다. 수천 명이 모이는 대규모 대중음악 공연이 안전한지 가늠해보는 시험무대인 셈이어서 대중음악계의 관심은 높았다.

공연이 시작된 건 오후 3시 30분. 그러나 이에 맞춰 올림픽공원에 도착한 관객들은 바로 공연장에 입장할 수 없었다. 신분증이 있어야 가능한 입장권 수령을 거쳐 수십 분간 뙤약볕에서 대기한 뒤 신속항원자가진단을 마쳐야만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공연 시작 전후에는 관객이 몰리면서 수십 미터의 긴 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1'을 찾은 관객이 공연장 입장 전 케이스포돔 내에 마련된 부스에서 자가진단키트를 사용해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엠피엠지 제공

코로나19 자가진단 장소는 88잔디마당 옆의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 발열 확인과 QR체크인을 거쳐 들어가니 동시에 80명이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검사 방법은 간단하다. 검사용액에 타액을 섞은 뒤 진단기에 두세 방울 떨어트려 변화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한 줄이 나오면 음성, 두 줄이 나오면 양성이다. 실제 확인까진 10분이 채 안 걸렸다. 관객 송수진(27)씨는 “20~30분 기다리다 입장했는데 불편하긴 하지만 안전한 공연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이날 마지막 관객까지 단 한 명도 양성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장을 찾은 자가진단 키트 제조사 피씨엘의 김소연 대표는 “감염 1, 2일차인 바이러스 100개 단계에선 PCR 검사로 잡아낼 수 있는데 자가진단키트는 1,000개 단계에서 잡아낼 수 있다”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선 이미 정부 승인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실시한 검사에선 정확도가 9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제품은 아직 국내 시판 전으로 대규모 행사에서 쓰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검역을 마친 관객은 코로나19 이전과는 전혀 다른 콘서트 풍경에 적응해야 했다. 무대 앞의 스탠딩존은 모두 좌석으로 바뀌었고 피크닉존도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돗자리 위치가 정해진 곳에만 앉을 수 있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과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 함성을 지르는 건 모두 금지됐다. 음식은 음료수 외엔 지정된 공간에서만 섭취하도록 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한 현장 스태프는 “몇 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일정 시간 이상 마스크를 내린 관객은 1명뿐이었고 떼창과 함성 금지 규정도 대부분 잘 지켰다”고 말했다.

함성이 터져 나와야 할 순간에 ‘내적 환호’의 정적이 흐르자 가수들은 어색해했다. 무대에 오른 가수 이하이는 "이런 방식의 공연이 낯설고 어색하다”면서 팔 동작을 유도하며 "우리 함께 ‘내적 신남’을 즐겨보자"고 말했다. 일부 관객들은 참지 못하고 짧게 함성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팔 동작과 박수, 휴대전화 플래시로 환호를 대신하며 공연을 즐겼다.

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1'에서 가수 이하이가 공연하고 있다. 엠피엠지 제공

27일까지 열린 뷰티풀 민트 라이프를 시작으로 7월부터 ‘미스터트롯’ ‘싱어게인’ 등 각종 TV 음악프로그램 관련 콘서트와 나훈아 콘서트 등 중대형 대중음악 공연이 속속 열린다. 가을철 대표 야외 음악축제인 자라섬재즈페스티벌도 10월 초 일정을 확정하고 오프라인 공연을 준비 중이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를 주관한 엠피엠지의 김상규 대표는 “시스템과 출연진 섭외를 제외한 운영 비용이 2배로 늘어 적자가 불가피하다”면서 “그런데도 공연을 연 것은 팬데믹 이후 대중음악 공연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안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투자가 필요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이번 공연을 안전하게 마무리하면 이후 열리는 대규모 대중음악 공연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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