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사랑하는 능력

한겨레 2021. 6. 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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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당선 이후 능력주의가 화두다.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는 공정한 경쟁으로 진정한 능력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공정해도 결국 경쟁하는 능력, 그러니까 싸우고 이기고 정복하는 능력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그런 능력자들은 경쟁에서 승리하려 하지도 않거니와, 승리해도 공정 따위를 운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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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전범선 ㅣ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당선 이후 능력주의가 화두다. 과학고와 하버드대를 나온 그는 학창시절을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회고한다. 본인의 승리는 노력과 능력의 응당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같이 능력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굳게 믿는다.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는 공정한 경쟁으로 진정한 능력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준석의 솔직한 계급주의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반격했다. 서울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그는 자신도 꽤나 승리한 사람이지만 한번도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한다. 이준석과 달리 그는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나만큼 행운이 따르지 않았던 친구들이 내 주변에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 그들과의 일체감이 나의 본질이다.” 이탄희는 자신의 승리가 노력과 능력뿐만 아니라 행운 덕분이라고 인정한다. 진보의 역할은 패자에 대한 배려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준석을 향해 “진보와 보수의 진검승부가 다가오고 있다”고 선포했다.

과연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둘 다 일단 자신이 능력 있는 승리자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둘 다 공정한 경쟁을 말한다. 다만 이준석은 본인의 승리가 정당하다고 보는 반면, 이탄희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볼 뿐이다. 사실 공정한 경쟁을 내세웠던 것은 문재인 정부다. “기회는 평등, 절차는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로 그 약속은 무너졌고, 기회를 틈타 이준석이 똑같은 약속을 하고 있다. 도대체 진보와 보수의 진검승부는 무엇으로 가를까? 고작 누가 덜 위선적인가의 경쟁인가?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란 승자의 정의다. 어떤 능력이 중요하고 어떤 경쟁이 공정한지는 승자가 정한다. 패자를 조금 더 배려한다고 해서 다르지 않다.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싸움이 공평하고 올바른지만 따진다. 절대다수인 패자가 결과에 승복해야 사회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공정은 승리를 정당화하고 패배를 수긍하게 만드는 장치다.

나는 공정한 사회에 살고 싶지 않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 살고 싶다. 공정은 거래나 싸움을 수식할 때나 쓰는 말이다. 예를 들어 공정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랑만이 사랑이다. 공정한 부모나 국가는 무섭다. 나는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꿈꾼다.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는 대한민국을 원한다.

진보와 보수가 하나같이 공정한 경쟁을 외치는 것은 모두가 시장주의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공정이란 철저한 시장 윤리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진보는 결과의 평등을 주장했다. 보수는 현실주의에 근거하여 전통적 가치를 옹호했다. 하지만 오늘날 자칭 진보와 보수는 누가 더 공정한지를 두고 경쟁할 뿐이다. 사회주의와 보수주의 없는 자유주의 내부의 갑론을박이다.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가 아쉽다.

능력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경쟁의 불공정이 아니다. 아무리 공정해도 결국 경쟁하는 능력, 그러니까 싸우고 이기고 정복하는 능력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이는 허버트 스펜서 이후 시장주의에 뿌리내린 적자생존의 신화다. 생존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사회적 다윈주의다.

능력주의는 경쟁하지 않는 능력, 져주는 능력, 한쪽 뺨을 맞았을 때 다른 뺨을 내미는 능력을 절대 선택하지 않는다. 돌봄 능력, 공감 능력, 환대 능력, 애도 능력, 다시 말해 사랑하는 능력을 높이 사지 않는다. 그런 능력자들은 경쟁에서 승리하려 하지도 않거니와, 승리해도 공정 따위를 운운하지 않는다.

오늘도 대한민국 사회가 지속되는 건 자의식 과잉된 정치인들의 경쟁력 때문이 아니다. 묵묵히 타자의 불안과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랑의 능력자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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