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한겨레 2021. 6. 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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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조형근ㅣ사회학자

몇년 전 통영 여행을 가던 길이었다. 은퇴하고 통영에 사는 지인 부부에게 전화를 했더니 마침 통영에 없단다. 생애 첫 해외여행 중인데 지금은 이탈리아 베네치아라며 들떠 있었다.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고, 앞으로는 여행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두분이 무려 해외여행을 갔다는 사실이 내 일처럼 기뻤다. 어쩌면 육십이 넘어서 처음 둘이 떠난 여행일지도 몰랐다.

내가 나온 대학 앞에서 오랫동안 복사집을 운영한 사장님 부부 이야기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 주머니 얇은 대학원생들은 비싼 외국 원서를 복사집에서 제본해서 공부했다. 자료집도 만들었고, 나중에는 학회지 인쇄도 맡겼다. 사장님은 장인정신이 투철했다. 아교풀을 직접 개발하고, 단단한 제본 방법을 찾아냈다. 품질이 좋아 단골이 됐다. 일정에 쫓겨 심야 작업을 할 때면 옆에서 졸면서 기다렸고, 끝나면 같이 소주 한잔 기울이기도 했다.

학위 마친 지도 꽤 지난 2012년 어느 날,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은퇴하려는데 인연 깊던 이들과 술자리라도 할까 한다는 뜻이었다. 열서넛쯤 모여 송별회를 열었다. 화제가 만발했다. 기백만원씩 제본값 외상하고 연락 끊긴 대학원생들도 입에 올랐다. 그런 이들이 적잖았다. 두분은 잊겠다지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처음으로 깊은 사연도 들었다. 노동운동을 하던 두분이 수배를 받아 숨어든 곳이 선배가 운영하던 복사집이었고, 결국 인수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 그 후 25년 남짓 외박 한번 한 적 없다는 말에는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니 그리 살았으리라. 사장님은 통영에서도 낚시하고 허드렛일하면 소주값은 벌 거라며 껄껄 웃었다. 사모님도 웃었다. 작은 제본기도 가져가서 가끔씩 사랑하는 제본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손노동을 사랑했다. 우리도 같이 사랑의 축배를 들었다.

사실 공부하고 논문 쓰는 데 교수와 동료 학생들만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많은 이들의 도움을 입었다. 누구보다 도서관 직원들이 고맙다. 학교 도서관 자료만으로는 학위논문을 못 쓰니 상호대차서비스를 많이 이용했다. 간혹 전산에 대차가 안 된다는 자료가 나오면, 담당 사서는 직접 그 도서관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하고 대차를 주선해줬다. 눈알이 빠질 듯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만히 간식거리를 놓아주고 가던 마이크로필름실 직원도 생각난다. 1940년대 말부터 학교에서 일했다는 신기료 할아버지는 해지고 닳은 구두를 뚝딱뚝딱 고쳐주다가, 찢어진 가방이나 우산도 달라고선 쓱싹쓱싹 공짜로 고쳐줬다. 구두 관리법이며 학교가 시내에 있던 시절 이야기며 늘 재미가 나서 옆자리 앉아 귀 쫑긋하고 들었다. 1970년대에 학교가 옮겨오기 전부터 그 자리에서 일했다는 기사식당 할머니는, 사람 밀리는 낮 시간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저녁에는 달걀부침 하나씩 얹어 주곤 했다.

어느 누구도 특별히 나를 위해 애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 자기 이기심에 따라 일할 뿐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사례일 것도 같아서, 감사 따위 필요 없을 것도 같다. 하지만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일 뿐이라면 거추장스럽기만 했을 작은 호의들이 ‘보이는 손노동’을 통해 내게 베풀어졌다. 그 덕에 내 공부가 좀 더 나아졌고, 내 삶이 좀 덜 힘들어졌다. 실은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란 이들의 노동하는 손인 것이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니 그 손이 보이지 않을 뿐.

특히 배웠다는 사람들일수록 이념을 불문하고 제 능력으로 모든 업적을 이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속으론 그리 믿으면서도 학위논문 말미에는 지도교수와 심사위원은 물론, 인연 닿는 온갖 힘 있는 이들을 향해 주렁주렁 감사의 말을 늘어놓기 일쑤다. 복사집과 도서관 직원, 신기료 할아버지와 식당 할머니들에게는 한마디 말이 없다.

사장님 부부가 강릉으로 옮겼다며 며칠 전 연락이 됐다. 나도 박사논문 감사의 말씀에 두분을 빠뜨렸다. 이번에 뵈면 늦었지만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겠다. 사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수많은 것들이 작은 호의 위에 성취된다. 단지 우리가 못 본 척할 뿐. 감사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우선 감사의 마음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외상값 사연에 찔리는 이들도 연락하면 좋겠다. 늦었지만, 그러니까 시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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