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의 강화일기] 장마 대비 지붕공사

한겨레 2021. 6. 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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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 ㅣ 그래픽노블 작가

문만 열면 땅을 밟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강화,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오기 전에 한달 정도 공사를 하고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할 것이 해마다 늘어났다. 반려견 당근, 감자, 초코가 마당에 오줌을 싼 자리에는 잔디가 모두 죽어버렸다. 비만 오면 마당은 진흙바닥으로 변해 물웅덩이가 생겼다.

지난달, 마당에 보도블록을 깔고 그 사이를 하얀 모래로 채웠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오빠가 와서 마당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오빠를 도우며 일을 배웠다. 장비만 있다면 다음엔 오빠가 없이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초코 집은 새로 예쁘고 크게 지어주었다. 비가 와도 편하게 피해 있을 수 있게 방부목으로 넓게 만들어주었다.

이젠 지붕 차례였다. 6월 말에 장마가 시작된다고 했다. 장마가 오기 전에 반드시 해야 했다. 업자는 요즘 일이 너무 많다고 6월 중 비 안 오는 일요일에 공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일요일에 공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요일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나는 공사의 소음은 쉬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민폐다. 그래도 일요일밖에 안 된단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6월 안으로는 무조건 공사를 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계약금을 이체했다.

공사를 하기로 한 일요일 아침은 습기를 잔뜩 먹었다. 7시30분, 노동자 여섯명이 오기로 했는데 다섯명이 왔다. 네명은 공사를 직접 하는 사람들이었고 한명은 지난번에 계약서에 사인한 업자였다.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했다. 마당은 그들이 가져온 기계 장비와 지붕 철판, 나무, 사다리 등으로 가득 찼다.

지붕 위로 올라간 사람들에게 안전장치는 없었다. 나는 안전장치를 해야 된다고 업자에게 말했다. 그는 이보다 더 높은 지붕에서도 안전장치 없이 일한다고 했다. 운동화를 신은 그들의 발이 조금만 삐끗해도 추락이다. 운동화 바닥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이는 낡은 운동화였고 바닥도 꽤 닳아 보였다. 지붕 위에서 철판을 자르고 지붕과 허공의 경계선에서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아찔한 건 나였다. 현기증으로 토할 것만 같았다. 지붕 위의 그들을 보면 안 좋은 상상이 나를 위협했다. 언론 뉴스로 보는 노동자들의 사고 소식과 겹쳐졌다. 대한민국에서 구축하고 지켜져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안전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만에 지붕 공사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프랑스인 남편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더구나 여섯명이 오기로 했는데 한명이 덜 왔으니 네명은 다섯명 몫의 일을 해야 했다. 쉬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하루 만에 끝낸 지붕 공사가 내 마음에 들 리 없다. 그들이 최선을 다했음을 안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는 나는 슬프고 화가 났다. 시간에 쫓기듯 그렇게 일을 해야 하는지? 안전장치 없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하루를 살아야 하는지? 일이 마무리도 안 되었는데 이미 장비들은 트럭에 정리되어버렸다. 업자는 내게 공사 후에 남은 쓰레기를 놓고 가겠노라 한다. 고물 장수가 가져갈 거라고 했다. 그 철판 쓰레기는 옆집 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뭇가지 하나 옆집으로 넘어가도 자르라고 한다. 그 책임을 내가 질 수 없었다. 여섯명 계약해놓고 다섯명만 온다는 말을 업자는 내게 예고하지 않았다. 나는 6인분 예약한 밥값을 그대로 치러야 했다. 지붕 마무리 작업도 손해였다. 그들이 급하게 일하느라 인터넷 선을 끊었어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업자는 계약금 외의 공사비를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계약할 때 분명히 계좌이체로 서로 합의했던 부분이다. 나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온 마을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본인 나이가 일흔일곱이고 그 나이 먹도록 다른 데 공사할 때 다들 그렇게 하는데 왜 나는 안 된다고 하는 거냐며 협박하듯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의 폭력성에 몸서리가 쳐졌다. 내가 여자라서 당신이 이러는가 싶기도 했다. 그 와중에 마을 사람이 지나가며 지붕 공사 하느냐고 물었다. 벌써 여덟번째 사람이었다.

프랑스인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나라도 집 공사 할 때 이래?” 질문을 하기 전에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 시부모 집 공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남편이 대답했다. “이게 뭐야! 마무리도 안 하고 그냥 도망가듯 가고. 특히 안전장치 없이 지붕 위로 올라가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속이 상해도 그들이 무사고로 집으로 돌아갔으니 다행이다. 내일도 그들에게 무사고의 행운을 바란다. 이번주에 비가 온단다. 설마 이젠 지붕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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