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정책 주고객은 北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다 [한반도 갬빗]

2021. 6. 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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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워싱턴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을 지지한다.

북한이 응답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말이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정책초점들은 모두 얻어냈다. 바로 중국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미국 시사주간지 23일(현지시간) 타임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국을 치유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에 나섰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명시했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는 ‘조정되고 실용적 접근’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로 견인하겠다고 했지만, 북한이 물밑접촉에 응하지 않는 이상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을 모양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타임(TIME)지 표지 촬영과 화상인터뷰를 했다고 24일 밝혔다. 타임지 표지와 인터넷판 기사. [연합]

지난 19~23일 한국을 방문한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행보만 봐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대화에 열려 있지만, ‘당근’은 먼저 줄 수 없다

김 대표가 방한을 통해 내보낸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메시지는 명료했하다: 미국은 북한에게 먼저 ‘당근’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당근’을 원한다면 무조건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

북핵문제를 담당하는 한국의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미국의 성 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했다. [사진 공동취재단]

김 대표는 외교안보전문가들을 초청한 간담회에서도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기 위한 추가적인 ‘인센티브’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인영 통일장관을 만났을 때도 김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제안하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조치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협의나 제재면제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중앙집권적 세습체제를 택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협상을 임할 때 ‘대외적 모양새’가 중요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종식’을 천명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스크 쓴 모습’을 연출할 수 없어 해외 순방에 나서지 않는 맥락과 비슷하다. 중앙집권적 체제에서는 무엇보다 체면과 연출이 공개적 협상에 나설 때 필요하다. 전직 북한 당 기관 출신의 한 탈북자는 “2018년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북한 당국으로서 중요한 건 문 대통령이 먼저 38선을 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었다며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위대한 리더십’으로 남한의 대통령이 대화에 나섰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특성을 존중하면서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유지해왔다. 북측에 유리한 장면이 연출되더라도 대화를 지속하는 게 차단하는 것보다 낫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는 결국 북한보다는 ‘미국’을 움직여서 대화진입을 시도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지난달 21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모습. [연합]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이러한 ‘체면’과 ‘모양새’를 존중한 접근이 북한의 협상입지를 강화한다고 바라보고 있다. 지난 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대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김 위원장이 보다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을 적법한 체제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북한이 대화로 나설 ‘명분’으로 체면을 살려주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탐색전 장기화 속 눈에 띄는 ‘문재인 정부 달래기’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미국에 제시하고 있다. 미국에 유연한 접근을 유도해 북측에 대화 ‘명분’을 제공하겠다는 계산이다. 이 장관은 김 대표에게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방문을 공동추진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화된 협의는 없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국무부와 직접적인 협의체제를 마련하자는 통일부의 제안에도 회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를 접견했다. [연합]

그럼에도 미국은 “남북대화를 지지”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재개 노력을 지지한다고 강조한다. 남북 판문점 합의와 북미 싱가포르 정상합의에 대한 존중의사도 한미 정상회담 이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선 언급하지 않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철저한 이행을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강조하는 등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원칙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청중(audience)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다.” 한 한미 외교전문가는 이같이 평가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분석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를 완료한 이후 신경 쓰고 있는 것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거듭 ‘일치된 대응’을 강조하면서 대북정책으로 한미간 이견이 노출되는 걸 막는 데에 힘쓰고 있다. 북한이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는 덕분에(?)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억지력을 강화하고 확장억제력을 다지기 위한 훈련에 나설 명분도 확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후 시도’와 바이든 행정부의 ‘지연 전술’

평화프로세스는 문재인 정부 임기 말까지 가동하긴 힘들 전망이다. 코로나19와 홍수, 대북제재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에 문 대통령은 백신 제공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북한은 대화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북한이 조금이라도 자물쇠를 풀 수 있도록 미국에 대북견인책을 촉구했지만, 미국 역시 ‘지지표명’만 할 뿐 행동하진 않고 있다.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원(CSIS) 수석연구위원이 타임지에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연전술”이라고 묘사한 이유다.

[헤럴드DB]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대화에 나선 이후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동맹국들과 협의해서 나아가겠다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정부 당국자는 부인하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의 목표가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목표 대비 정책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그러는 사이 바이든 정부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결속을 다졌고, 한미 정상 공동성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로부터 대중국 견제정책에 대한 지지까지 얻어냈다. 오히려 대중국견제정책 일환으로 꼽히는 과학기술 분야는 더 빠른 속도로 구체화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은 오는 7~8월 중 차관급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주고객은 북한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다. 대북정책 조율을 두고 한국과의 호흡만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미국의 대북정책 주고객을 북한으로 재설정하려면 문재인 정부가 ‘북한이 대화에 응한다’는 전제를 조기 성립시키는 수밖에 없다. 이러나 저러나 대화조건의 벽을 낮추지 않고 있는 북미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의 고심만 깊어지고 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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