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마련한 내 집인데..웬 날벼락" 이행강제금에 속 끓는 근생빌라 매수자

조성신 2021. 6. 27.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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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상가 불법개조 근생빌라 피해 속출
불법사실 모르고 매입해도 이행금 내야
개정안 1년 넘게 국회 계류 중
"집 매입 전 건축물대장 반드시 확인해야"
다가구 다세대가 많은 서울 중구 약수동 모습.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 = 조성신 기자]
"의심할 게 없었죠. 누가 이행강제금 낼 걸 알면서 계약을 한답니까"

# 인천시내 한 빌라에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작년 11월 구청으로부터 등기우편물을 받았다. 내용인 즉, 거주 중인 빌라가 '위반건축물'에 해당하니 위반 내용을 원상복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매년 고액의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A씨는 몇 번에 걸쳐 읽어 봤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빌라 매입 당시 계약부터 잔금, 이사까지 모든게 순조로웠기 때문이다. 결국 구청 담당자에게 물으니 본인이 살고 있는 건축물이 주택 용도가 아니라, 사무실 용도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제서야 A씨는 자신의 집이 불법변경 건축물인 '근생빌라'라는 사실을 알았다.

빌라 매입 당시 축물대장을 확인 못한 실수가 수백만원의 이행강제금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거래 당시 이에 대해 일절 설명하지 않은 중개사는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A씨는 "속아 산 내 잘못만 있느냐. 내 집이 '집'이 아니라니 답답해 죽겠다"고 가슴을 쳤다.

근생빌라는 사무실이나 상가를 허가 없이 주택으로 불법개조한 건축물을 말한다.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되는 근생빌라는 생활편의시설로만 사용해야 하고, 주거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 현행법에 따르면 위반 사실이 적발됐을 시 현 소유주가 수백~수천만원 상당의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불법임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예외 제항이 없어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는 실정이다.

근생빌라가 늘어나는 이유는 대부분 개발이익을 높이려는 욕심 때문이다. 건축주 입장에 소매점·사무실 등 용도의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를 받으면 주차장 면적은 줄이면서 높은 층수로 건물을 올릴 수 있어 비용적으로 이득이 있다. 건축주들은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를 받아 건물을 짓고, 추후 취사 시설을 설치해 주택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근생빌라를 지어왔다. 겉으론 주택의 모양새를 갖춘 데다 전입신고까지 가능해서 근생빌라가 불법건축물이란 사실을 모른 채 매매한 수요자들이 많았다.

문제는 불법건축물인 사실이 적발될 경우 당초 불법 행위를 한 건축주가 아닌 현 소유주들에게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는 것이다. 취사 시설을 철거하지 않으면 매년 최대 2회씩 시가 표준액의 10%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근생빌라'는 생활편의시설
창2동 준공업지역 빌라촌 모습 [매경DB]
27일 주택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근린생활시설은 주차장 및 층수제한 등이 주택 기준과 달라 사실상 용도변경이 불가하다. 현행 서울시 부설주차장 설치기준을 보면 근린생활시설은 시설면적 134㎡당 1대의 주차장을 설치하면 되지만 다가구주택 및 공동주택은 면적기준에 따라 가구당 최소 0.5대 이상 주차장을 설치해야 한다.

층수 제한에서도 건축법상 다가구주택은 3층 이하, 다세대주택 및 연립주택은 4층 이하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근린생활시설은 별도로 층수제한을 두지 않는다. 근린생활시설 용도에는 주차, 층수 제한이 없다 보니 건물을 더 높게 짓고 주택 용도로 시중 시세보다 싸게 판매하는 건물주가 많아 매수자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A씨는 건축물 허가를 내준 구청을 찾아가 "이제 와 불법이라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구청 측은 "불법 변경 사실을 속이고 허가요청이 들어오면 서류만보고 허가를 내줄 수 밖에 없다"면서 "불법변경 건축물로 드러난 이상 원상보구나 이행강제금을 내셔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내가) 바보 같아서 어디에 얘기도 못 하고 있다. 언제 이행강제금 부과 통지문이 언제 올지 몰라 조마조마하게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몇 년 동안 수도권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대체지로 빌라를 선택하는 수요가 늘면서 위반건축물로 인한 피해 사례도 덩달아 늘고 있다. 경기도 성남의 한 빌라에 사는 B씨는 지난 2019년 소방 점검을 통해 자신의 집이 위반건축물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B씨는 "소방서가 건물 외부 사진을 관할지역 구청으로 보낸 뒤 불법변경 사실 통보를 받았다"면서 "집안 점검 없이 외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단속할 수 있었는데 왜 사용승인 후 바로 적발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고 집 산 사람만 고액의 이행강제금을 떠앉는 꼴이 됐다"고 억울해 했다. 그는 관할 구청에 사정도 해봤지만, 이번 특별점검은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소방·전기·도시가스 합동 점검이고 이 과정에서 불법변경 사실을 확인한 것뿐"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구청 담당자의 대답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B씨는 "건축주(분양사무실 또는 공인중개사)가 불법개조한 빌라이고, 적발 시 원상복구 또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고 한 번만이라도 고지했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자체 인력 부족으로 관리·감독이 사실상 불가한 점을 악이용한 건축주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결국 애꿎은 서민만 모든 책임을 진다"고 지적했다.

개정안 1년째 국회 계류 중…"건축물대장 살펴봐야"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근생빌라 같은 위반건축물의 불법 중축·개축·개조 등 책임은 ▲건축주 ▲공사시공자 ▲현장관리인 ▲소유자 ▲관리자 ▲점유자가 져야 한다. 관할 관청이 위반건축물을 발견하면 이들에게 위반 부분에 대한 철거, 용도 변경 등 명령을 내리며, 따르지 않으면 매년 이행강제금을 부여할 수 있다.

문제는 불법개조 여부를 고지받지 못한 채 근생빌라를 매매하거나 분양받은 이가 계약 취소를 요구하거나, 자신이 몰랐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이들 사이에서 법안을 개정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피해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게시물이 게재돼 1000번 넘게 조회되기도 했다.

피해자 C씨는 "근생빌라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데, 정부가 문제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 있느냐"며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를 받은 건축물이 용도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 실태 파악을 철저하게 하지 않아 근생빌라 피해가 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회에서도 이 같은 현실을 인지하고는 하고 있으나, 법안은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개정을 준비 중인 한 여당 관계자는 "20대 국회 때 임기가 만료됐다가 21대 때 다시 냈는데 아직 심의도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토교통부에서 건축물 불법 변경을 한 데서 발생한 선의의 피해자를 배려할지, 말지에 대한 정책적 결정을 해야 한다"며 "올해는 가능성이 있단 말도 있었는데 아직은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신호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교통위원회 간사 쪽에도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정부의 판단이 중요하다"며 "언제 될지 전망은 속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근생빌라 소유주들은 현 거주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한다. 매수자들에게도 주의 의무가 있으나,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근생빌라의 주택 양성화도 요구하고 있다. 전국 다세대 근린시설 피해자 모임 대표 장모씨는 "근생빌라에 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액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고 있다"며 "정부가 주택난 해소를 위해 공실 상가를 주거용으로 용도 변경한 사례도 있는데, 근생빌라 양성화를 위한 법안은 왜 계속 계류 중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불법건축물 양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 내용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위반건축물을 양산할 위험이 크다는 게 이유다. 그러면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건축물대장을 확인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를 받은 건축물이 용도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 실태 파악을 철저하게 하지 않아 근생빌라 피해가 멈추지 않고 있다고 우려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결국 불법행위를 한 원인자인 건축주에게 이행강제금을 물릴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면서 "건축주에 의해 주거용으로 바뀐 근린생활시설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유예 기간을 부여해 양성화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건축주에게도 확인 설명 의무라는 게 있다. 공인중개사도 위반건축물임을 설명해야 하고, 매도인도 위반건축물임을 고지할 필요가 있다"며 "현행법상 이행강제금을 무는 정도가 많지 않으니까 지금 (상황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 원장은 이어 "(건축주가) 위반건축물임을 고지하지 않았을 때는 과태료 등 처분을 받는 게 맞다"며 "(위반 내용이) 건축물대장에 표시되어 있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등기부등본뿐만 아니라, 건축물대장을 떼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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