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만 있어도 집값 오르니".. 주민 갈등의 진원 된 'GTX'

고성민 기자 2021. 6.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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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신설 노선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 전국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과 집값 안정을 위한 인프라로 GTX를 내세웠다. 완공 이후 주택 수요 분산 등의 효과가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GTX가 지나는 노선마다 집값이 급등하는데다 지역 갈등까지 불거지며 부동산 시장 불안정의 진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22일 찾은 청량리역 인근 SKY-L65 공사 현장에 입주자들이 내건 'GTX 왕십리역 신설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고성민 기자

2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GTX-C 노선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선정되며 지역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왕십리역에 추가 역 설치를 제안했다. 왕십리역 인근에선 당연히 환영하는 반면 청량리역 인근 SKY-L65 입주자들은 공사 현장에 ‘GTX 왕십리역 신설반대’라고 적은 현수막을 크게 내걸고 반발하고 있다.

청량리역은 GTX-C 노선 기존 정차역으로 확정된 곳이다. 인근 주민들은 노선 계획상 2.3㎞ 거리로 가까운 왕십리역이 추가될 경우 완행열차가 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는 중이다. 또 왕십리역이 GTX 환승역이 되면 청량리의 GTX발(發) 집값 상승 동력이 반감된다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청량리역~삼성역 기존 구간 사이에 왕십리역이 추가되면 청량리의 위상이 흔들릴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 청량리역 인근 전농동 롯데캐슬노블레스는 전용 84㎡가 1년 전(12억9000만원)보다 3억원(약 23%) 오르는 등 교통호재로 상승세가 가팔랐다. GTX가 교통 개선 호재를 선반영해 집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들어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가파르게 오른 지역은 GTX-C 노선 기대감이 달아오른 의왕(20.52%)이었다. 또 GTX-B 노선이 지나는 인천 연수(15.75%), GTX-C 노선이 지나는 의정부(11.61%), GTX-A 노선이 지나는 고양 덕양(11.50%) 등의 상승률도 높았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값은 5.80% 오른 것과 비교하면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청량리역과 왕십리역의 갈등은 과천역과 인덕원역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왕십리역에 더해 인덕원역 추가 역 설치를 제안했다. 그러자 인덕원역에서 약 4.2㎞ 떨어진 과천역 주민 역시 반발하고 있다. 김종천(더불어민주당) 과천시장도 2019년 “GTX-C노선 인덕원역 설립에 반대한다”면서 “인덕원역 정차로 인한 반쪽짜리 GTX-C노선 사업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 역시 표면적으로는 완행열차 우려가 나오는데, 실제론 GTX발(發) 집값 상승 동력이 약해진다는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실제 의왕 포일동 ‘인덕원 푸르지오 엘센트로’는 전용 84㎡가 지난 4월 15억3000만원, 이달 16억3000만원에 거래되며 과천을 긴장케 했다.

지난 1월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외벽에 'GTX 은마 통과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오종찬 기자

GTX를 둘러싼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GTX-D 노선이 강남 직결이 아닌 김포~부천(김부선) 구간으로 쪼그라들며 김포와 인천 주민들의 원망을 산 것이 대표적이다. 김포와 인천 시민들로 구성된 ‘김포검단교통시민연대’는 청와대를 찾아 삭발 시위까지 펼치며 격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GTX-C 노선에 대해선 강남구 은마아파트 주민들도 반대하고 있다. 지하철역 신설과는 무관한데, 이 노선이 은마아파트 지하 40m 깊이를 지나가는 대심도 철도로 설계돼 안전 우려로 노선 우회를 요구하는 것이다. 은마아파트 주민들도 아파트 외벽에다 ‘GTX-C 노선 은마통과 결사반대, 국토부는 왜 속였나’라고 적은 붉은색 현수막을 내걸었다. 작년에는 GTX-A 노선이 강남구 청담동 주택가 지하로 통과하게 되자, 주민들이 노선 우회를 주장하며 시위를 펼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치적 이해관계 고려 없이 편익을 중심으로 노선을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계획 단계에서부터 전문적인 계획안을 수립하고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는데 아쉽다”면서 “정부는 고속급행의 GTX 성격에 맞춰 노선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근본적으로 주택이 먼저 들어서고 간선교통체계가 나중에 들어서며 생기는 문제라, 앞으론 간선교통체계를 먼저 확정하고 이후 택지개발을 하는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하철 신설을 두고는 항상 이런 문제가 생기는데, 모든 주민들의 얘기를 다 들어주다 보면 결국 완행으로 바뀌게 되지 않겠느냐”면서 “지역별 의견을 고려하되 가장 편익이 큰 곳을 중심으로 노선이 지나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강승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철도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체적인 운행 기준시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가역을 만드는 것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전체 노선의 표정속도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가능한지, 역사 설치 비용을 지방자치단체에서 각자 내겠다고 제안하는데 과연 충분한 건지, 인근 역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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