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왜 살을 뺐나? 체중감량의 통치전략

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2021. 6. 27. 05: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살 빠진 김정은..의도적인 체중 감량 관측
건강만이 아니라 이미지 변신 위한 살 빼기
'뚱뚱한 체구'도 김일성 카리스마 재현 전략
급격한 감량은 現 대내외 정세 대응 의도
신비주의 이미지 탈피, 혁명적 수령관도 변화
김정은 집권 10년 차 김일성 탈피 '홀로서기'
전문가 "정상국가 대중정치인 변신 계획 세우고 이행"

“극장국가 북한도 외부 세계의 반응에 화답하듯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권력 드라마를 제작해왔다. 어느 날 세계는 날씬해진 몸매에 양복을 입은 젊은 정치가 김정은을 보게 될 수도 있다”(정병호 지음, 2020년 2월 출판 『고난과 웃음의 나라』 중에서 발췌)

연합뉴스
최근 살이 부쩍 빠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이 화제이다. 정보 당국은 김 위원장의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몸에 이상이 있어서 살이 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에 이상이 없다면 식단과 운동을 통해 의도적으로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40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에 애연가인 김 위원장이고 보면 건강을 위해 살을 뺀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만이 아니라 김 위원장의 감량을 통치술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정은의 뚱뚱한 체구는 당초 3대 권력세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할아버지 김일성 따라 하기’에서 시작됐다. 뚱뚱한 체구는 고풍스런 인민복과 패기머리로 불리는 헤어스타일, 중절모 등과 함께 김일성 주석의 카리스마 권력을 재현하는 한 세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리사로 13년간 일한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많이 먹어 관록을 붙이라”, “위에 있는 사람이 가늘어선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살 찐 김정은의 시작이다.

김 위원장의 과도한 체중이 탐욕과 나태의 결과라기보다는 이른바 ‘지도자다운 풍채’, 무게감과 권위를 얻기 위한 통치전략 차원의 연출인 셈이다.

김정은의 뚱뚱한 체구가 수령의 특별한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한 유훈통치적 통치술이라고 한다면, 체중의 급격한 감량에도 현재의 대내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통치 코드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최근에 당 전원회의에서 식량부족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제재와 코로나, 자연재해 등 3중고로 인민들이 먹고 살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최고지도자의 고도 비만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런 일”이라며, “인민들에 헌신하는 애민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격무로 살이 빠진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수령의 절대 권력을 감안할 때 북한 인민들이 김 위원장의 고도 비만을 탐욕과 나태함으로 연결시키며 불편하게 생각할 개연성은 없어 보인다. 2000년대 초반에 북한에서 나온 탈북민 A씨가 전하는 북한 인민들의 일반 정서이다.

A씨는 그러나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년에 병고로 급격히 살이 빠졌을 때 북한 당국이 인민들을 위해 너무 많이 애쓴 결과라고 선전한 것처럼, 살 빠진 김 위원장을 애민주의와 연결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0일 나흘 동안 진행된 당 전원회의 종료 뒤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 소식을 전하면서 김 위원장의 활동에 대해 "연 4일간에 걸치는 불철주야의 노고"라며, 인민에 대한 김정은의 헌신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인민헌신의 애민주의,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강조하면서 ‘혁명적 수령관’에도 일부 변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기동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노동신문 사설에 대한 분석 결과 혁명적 수령관의 핵심 테제, 즉 혁명과 건설에서 차지하는 수령의 절대적 지위와 결정적 역할 중에서 절대적 지위에 대한 언급이 빠지고 있다”며, “지난 2019년 3월 전국 당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김정은의 서한에서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는 주문과 같은 맥락에서 수령의 절대적 지위를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올 초 개정한 당 규약에서도 인민에 대한 교양 중에서 ‘수령의 위대성 교양’은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동호 이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인민들에게 사죄와 감사를 반복하고, 민생 특별명령서 발령에 육아·출산에 대한 국가대책 발표 등 민심잡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도 “"수령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수령 없이는 당도 인민도 없다는 논리의 '혁명적 수령관'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수령'의 모습을 보여야 할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며, "그만큼 경제·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북한주민들의 좌절과 분노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없으면 나오기 힘든 대응 형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살이 빠진 김정은의 새로운 이미지는 올해로 집권 10년차를 맞는 시점에서 시도되는 ‘홀로서기’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 하기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북한 미술을 전공하는 박계리 국립통일교육원 교수는 김일성·김정일의 동상 이미지를 분석하면서 “김 위원장의 김일성 따라 하기는 어느 시점부터인가 김정은 자신이 원하는 김일성의 이미지를 만들고, 거기에 자기 이미지를 오버랩하는 단계로 넘어갔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청년세대 등 인민들은 PPL 광고처럼 김정은과 리설주가 무엇을 신고 무엇을 입는지에 아주 관심이 많고, 유행처럼 따라 하기도 한다”며, “살 빼기 등 김 위원장의 이미지 변화는 인민들에 대한 영향력을 감안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올 초 개정된 당 규약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이 대거 삭제된 것도 김정은 스스로가 선대수령과 차별화된 독자적인 수령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수령에 임기는 없다. 김 위원장이 올 들어 향후 15년을 상정한 국가발전 로드맵을 말하고, 사회의 기본 토대가 되는 육아·출산에 대한 국가 지원, 2,30년 이후 세대에 대한 고민 등 매우 장기적인 과제를 말하는 것도 ‘수령의 평생 통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비핵화를 통한 미국과의 수교는 장기 통치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 과제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정상국가화로 명명되는 이 과제들은 북한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통할 수 있는 최고 지도자의 이미지 변화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살 빼기도 그런 변화의 일환으로 보인다.

정병호 한양대 명예교수는 “김 위원장이 집권 10년을 맞아 선대에서 벗어나 자기 스타일을 만들고 있는데, 그 스타일이 정상국가의 리더로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훨씬 더 국제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라며, “남한 등 외부로 기울어져 가고 있는 북한 인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김 위원장 스스로가 경쟁력 있는 대중 정치가로서의 면모와 이미지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병호 교수는 “김 위원장이 정치모드의 장기적인 변화를 지향하며 정상국가의 대중 정치가로 가는 일련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본다”며, “살 빼기 등 새로운 이미지 연출도 그런 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