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넣었으면 30억원?"..잡코인 폭등에 흥분한 투자자들 [코인노트]

임형준 2021. 6. 2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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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노트-7]
지난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 내 코인 시세 전광판 /사진=이충우 기자

"우와~ 1000만원 넣었으면 순식간에 30억원 됐겠네?"

최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상장폐지 보류를 발표한 직후 특정 코인 가격이 수십 배 폭등했다는 소식을 듣고 30대 A씨가 보인 반응입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에 자산 일부를 투자하고 있다는 A씨는 "그런 곳에 큰돈을 넣을 생각은 없다"면서도 "혹시 미쳐가는 시장 여기저기에 대박 기회가 넘치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고 말했습니다.

A씨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이번주 수많은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던 '잡코인 수십 배 폭등' 현상은 거래대금 기준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빗에서 지난 23일 일어난 일입니다.

코인빗은 이날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가상화폐 8종의 거래 지원 종료(상장폐지) 일정을 별도 공지사항 안내 전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코인빗은 지난 15일 가상화폐 8종에 대해 상장폐지를 예고했는데, 사실상 단 일주일여 만에 이 결정을 완전히 뒤집은 것입니다.

상폐 보류 직후 32000% 폭등에 '시선 집중'

심지어 상장폐지 보류 결정은 상장폐지 예정 시점을 불과 4시간 앞두고 공지됐습니다. 거래소가 휴지 조각이 되기 직전이어서 가치가 최저점을 찍은 코인을 구제해준 모양새였습니다.

상장폐지가 결정된 후 가격이 80~90%씩 급락했던 렉스(LEX), 이오(IO), 유피(UPT) 등 코인 8종은 상장폐지 보류 소식이 알려진 후 그야말로 '미친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유피는 상장폐지 보류 공지 전 0.04원이던 가격이 공지 직후 13.10원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순식간에 무려 3만2650% 상승률을 기록한 겁니다.

언론이 대표적인 급등 코인으로 보도했던 렉스는 25일 오전 한때 4000원에 거래되며 이틀 전 최저점보다 약 6500%까지 올랐습니다. 상장폐지 보류가 발표되기 직전 렉스가 거래된 최저 가격은 60원에 불과했습니다. 디콘 등 상장폐지 위기를 일단 한번 넘긴 다른 코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계속해서 큰 변동성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많게는 수십 배까지 가격이 올랐습니다.

비상식적인 시세 이상 급등 현상에 시장의 시선은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 언론이 '상폐 연기에 30배(3000%) 폭등' 같은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낼 정도였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이 소식을 주요 포털사이트 메인 기사로 전했습니다.

이렇게 주요 언론까지 포털 메인 기사로 선정할 정도니 가상화폐에 비교적 관심이 없는 사람은 뭔가 '큰일'이 벌어졌거나, 누군가가 '대박'을 터뜨린 큰 기회가 지나간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A씨는 "잘 모르는 분야인데도 이런 기사 제목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허무함과 박탈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가격 변동만 보면 위험…호들갑 떨 일 아냐"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에 일어난 '잡코인 폭등 사태'가 결코 정상적인 '돈 벌 기회'는 아니었다고 단언합니다. 또한 실제로 엄청난 '대박'으로 부를 만큼 큰돈을 번 사람조차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입니다. 일종의 '착시'라는 겁니다.

특정 가상화폐 가격이 30배 넘게 급등했는데도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이런 분석을 내놓는 것은 '거래량' 때문입니다. 시세는 수십 배까지 폭등했지만 거래량이 너무 적어 정상적인 가격 상승으로 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특히 거래량이 극히 적은데도 순식간에 시세 급등이 일어난 걸 보면 누군가가 '시세조종'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이 나옵니다.

실제로 24일 하루 코인빗에서 가장 가격 상승폭이 컸던 렉스의 총 거래대금은 3억원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순식간에 30000%가 넘는 상승률을 보였던 유피 또한 거래대금이 7억원대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상폐 연기'라는 호재성 소식을 구실로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을 들여 눈에 보이는 가격만 올렸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주식시장에서 1개 종목처럼 여겨지는 한 종류의 코인 시세를 단 몇 억 원으로 3000% 이상 폭등시킬 수 있다는 거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른바 '잡코인'으로 불리는 비인기 가상화폐는 현금 2억~3억원을 가진 흔한 개인이 혼자 사고팔아서 가격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극단적인 가격 변동성을 보여준 이상 현상은 맞지만 거래량이 극히 적어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런 경우 시세조종일 수 있기 때문에 가격 변동성만 보고 투자에 뛰어드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양대 거래소 '소송전' 시작…사태 반복될 수도

문제는 앞으로도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진 뒤 번복되는 유사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오는 9월 24일 시행되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을 앞두고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어서 '잡코인 정리'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근 국내 양대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이 상장폐지를 둘러싸고 가상화폐 개발 업체와 소송전을 시작한 상황입니다.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는 최근 거래 지원을 종료(상장폐지)한 '피카(PICA)'의 발행사 피카프로젝트와 상장폐지 이유를 놓고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빗썸에서 상장폐지가 결정된 블록체인 프로젝트 '드래곤베인(DVC)'은 2위 업체인 빗썸에 상장폐지 효력 정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형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를 당한 업체들은 상장폐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불공정하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외부에 상장과 상장폐지 기준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국내에서 가장 큰 거래소들마저 소송에 휘말리는 등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해서 상장폐지 관련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법적 분쟁이 잦아질수록 일사천리로 쉽게 끝나는 상장폐지는 점점 줄어들 수 있습니다. 법적 분쟁 절차나 속도에 따라 상장폐지 결정이 연기 또는 번복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죠.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시세 이상 급등락 현상이 발생하면 '도박장'과도 같은 이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점점 더 생겨날 겁니다.

가상화폐 시장은 세계적인 가상자산 시장 확대 추세와 함께 당분간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혹시 '상폐 코인'들이 기록적인 상승률을 순식간에 기록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만 사볼까' 혹은 '다음 상폐 연기 코인을 노려볼까' 같은 생각을 떠올리셨나요?

여러 업계 관계자에게 '이런 코인들에 관심이 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가장 짧게 답해준 분의 답은 "촉수엄금(손 대는 것을 엄하게 금지함)"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주식시장에서 정말 어쩌다 한번씩 접할 수 있었던 '○○○ 1000% 급등' 같은 소식을 이상하게도 참 자주 듣게 된 요즘입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아니 적어도 '잡코인' 시장에서는 소수가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은 가격 왜곡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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