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절 베개, 꿀잠 주스..제발 6시간 이상 푹 자고 싶어서

김미향 2021. 6. 2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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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기획][토요판] 기획
잠을 찾는 사람들의 세계
코로나19 뒤, 새 수면문제 경험 62%
잠드는 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 늘어
"꿀잠 자고파" "멜라토닌 먹어요"
숙면 관련 유튜브·책·꿀잠주스 등
'잠'이 다양한 콘텐츠가 되는 시대
국내 관련 산업만 3조원 규모 추산
장시간 일·공부 권하는 문화가 원인
치료에 앞서 생활습관 전반 점검을
게티이미지뱅크

▶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잠들지 못하거나 자고 나도 피곤한 수면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가 2019년 기준 64만명이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실내 공간에 주로 머물게 되면서 햇볕을 쬐지 못하거나 신체 활동량이 줄어 수면의 질은 더욱 떨어졌다. 잠드는 법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늘면서 잠을 소재로 한 정보와 상품이 많다. 숙면을 꿈꾸는 사람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33살 직장인 김수민(가명)씨는 요즘 밤 10시쯤 잠자리에 들어도 종종 새벽께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밤이 되어도, 업무가 남은 것처럼 개운치 않은 느낌에 시달리는 탓이다. 뒤척이다 결국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튼다. 가끔 밤 12시 이전에 잠들기도 하는데, 새벽녘에 깼다가 잠들지 못한다. 누운 채 다시 전날 못다 한 업무 생각에 시달린다. 한번은 애매한 시간에 잠이 깨어 새벽 5시에 회사에 나간 적도 있다. 이렇게 수면 패턴이 깨져버린 김씨는 기상시간, 식사 등 모든 것이 불규칙해졌다. 제대로 잠을 못 자다 보니 낮이 되면 피곤해서 커피를 석잔 이상 마신다. 카페인 효과로 밤이 되면 각성 상태가 이어지고, 다시 잠을 설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김씨와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회원수 2600여명에 이르는 수면 관련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잠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온다. “잠 좀 푹 자고 싶네요 ㅠ”, “꿀잠 자게 해주세요”, “진짜 효과 있는 수면유도제 없을까요?” 6000여명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또 다른 커뮤니티에도 “무작정 걷기를 시작했어요”, “(수면유도 호르몬이 담긴) 멜라토닌 먹으며 버티고 있어요” 등 잠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사연이 올라온다. 모바일 메신저에서 ‘불면증’을 키워드로 내걸고 운영되는 단체 채팅방에는 잠 못 드는 이들이 모여 새벽까지 ‘수면 근황’을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잘 자는 법 찾아다니는 사람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보면, 잠을 못 자거나 자고 나도 피곤한 수면장애 환자는 2019년 기준 64만1806명으로 한해 전인 2018년 56만8067명(건강보험 가입자의 1.1%)보다 약 13% 증가했다. 앞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수면장애 환자는 5년간 연평균 8.1%씩 증가했다. 수면장애는 불면증, 기면증, 하지불안증후군, 코골이 또는 수면무호흡증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잠과 관련해 가장 흔히 알려진 불면증은 적어도 1개월 이상 잠드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잠에 들더라도 자주 깨는 일이 한주 3번 이상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이로 인해 낮 동안 매우 피곤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잠 못 드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불면은 단순히 ‘잠을 못 잔다는 것’ 이상의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 잠이 문화 콘텐츠의 핵심 소재가 되기도 한다. 최근 잠 못 드는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웹툰도 등장했다. 인스타그램에 웹툰 <수면 연금술사, 잘재남>을 연재하는 김현원 작가는 “요새 잠 못 자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등장인물은 주변 친구들의 실제 사연을 듣고 만들기도 한다”며 “저도 새벽 4~5시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괴로웠던 적이 많았다”고 했다. 웹툰에서는 공부를 위해 잠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수험생, 밤 10시에 누웠지만 다음날 업무 생각에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직장인, 늦은 밤 치맥파티를 벌이고 바로 잔 뒤 ‘제때 잤는데 왜 잠이 부족할까’ 고민하는 프로 야식러,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다 불면의 굴레에 빠져버린 30대 등이 등장한다.

잠 못 드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인스타그램 웹툰 <수면 연금술사 잘재남>(글·그림 김현원 작가).

많은 사람들이 잠들기 힘들어하거나, 자더라도 낮은 수면의 질로 허덕이다 보니 ‘잘 자는 법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서점가에는 잠에 관한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에세이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밤의 심리학>(책사람집)은 잠 못 드는 경험을 공유하는 책이다. 심리학자 다섯명이 밤에 느끼는 감정에 대해 전문가의 관점을 담아 수필 형식으로 펴냈다. 대표 저자인 허지원 고려대 교수(심리학)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심리학자도 잠 못 드는 밤을 매일 맞닥뜨리고 있다. 다만 저희는 오랜 임상경험과 연구를 통해, 수시로 찾아오는 삶의 고통을 넘어서는 작업을 다른 분들에 비해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불면이 찾아오면 일어나서 재미난 일을 조금 하다가 거친 잠을 자고 다음날 불현듯 깊은 잠을 이뤄보면서 불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면의학 전문의가 쓴 <생체시계를 알면 누구나 푹 잘 수 있다: 저절로 잠드는 법>(코리아닷컴) 같은 정보성 서적도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에서는 ‘숙면’, ‘잠’ 등을 키워드로 한 채널이 구독자 수십만명을 보유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불면에 시달리는 이들을 숙면으로 이끈다는 수면용품의 세계도 눈길을 끈다. 온라인 쇼핑몰을 검색해보면, 눕자마자 기절한 듯 잠든다는 베개가 등장하는가 하면 바른 호흡을 통해 ‘꿀잠’으로 이끈다는 입벌림 방지밴드, 발바닥에 붙이면 숙면을 취한다는 수액시트 팩 등이 팔리고 있다. 얼굴에 착용하면 촉촉한 스팀이 뿜어져 나오는 라벤더향 수면안대도 있다.

잠에 빠지게 하는 음식도 있다. 신경 안정에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는 상추와 셀러리에 우유 등을 섞은 ‘꿀잠 주스’ 레시피가 인기를 끄는가 하면, 수면에 도움을 준다는 기능성 음료와 각종 수면용 영양제들이 상당수 시중에 나와 있다. 여기에 각종 정보통신(IT) 기술이 접목된 상품들까지 더해 국내 수면 산업은 해마다 성장해 2019년 3조원을 넘어섰다고 한국수면산업협회는 추산한다.

한국인은 왜 못 잘까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견줘 잠자는 시간이 상당히 적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를 보면, 2016년 전세계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22분인데, 한국은 7시간51분이다. 평균 31분 적은 수치로 최하위권이다. 더욱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한국인들의 수면 만족도는 더욱 낮아졌다. 다국적기업 필립스가 올해 3월19일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수면 동향’ 설문조사(13개국 1만3천명 대상, 한국인 999명)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58%가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고 답했는데 한국인 응답자는 3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13개국 평균 평일 수면시간은 6.9시간, 주말 7.8시간이었으나 한국인의 평균 평일 수면시간은 6.7시간, 주말 7.4시간으로 낮았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수면 문제를 경험했다고 답한 한국인 응답자의 비율은 62%였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적게 잘까. 기존 연구를 보면 긴 근로시간, 과도한 학업 부담, 가사분담의 불평등 등 사회적인 여건과 연계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2017년 저널 <통계연구 22권>에 수록된 논문 ‘시간균형 관점에서 본 한국인의 잠’(전지원 영국 옥스퍼드대 시간사용연구센터 연구원)을 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모든 생애주기에서 덴마크, 이탈리아, 영국 등 조사 대상이 된 세계 9개국 중 가장 낮거나 두번째로 낮았는데 특히 청소년과 직장에 다니는 여성 집단에서 잠을 적게 자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은 잠을 줄여 그 시간을 노동과 학업, 가사노동에 쓰고 있다고 논문은 분석했다.

이헌정 대한수면의학회 이사장(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잠을 아껴서 뭔가 성과를 내겠다는 것은 잠의 중요성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잘못된 생각으로, 우리 사회도 수면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며 “불면을 치료로만 접근하는 이들이 많은데 약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생체리듬을 살리도록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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