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형 죽었어요"..하나뿐인 가족과 이별이 이렇게 가깝다

한겨레 2021. 6. 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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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셨네요?" "매형 죽었어요." "그러셨구나. 이제 혼자 살아가야겠어요."

좀 더 큰 거실의 침대에서 매형이 지내고 석진님은 작은 방에 이불을 깔고 지냈다.

현관문 바로 앞에 앉아 석진님과 이야기 나누면 멀리 거실에서 매형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잠시 함께였던 매형마저 사라지고 이제 정말 혼자가 된 석진님이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실지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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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홍
24. 홀로 된다는 것
게티이미지뱅크

“오늘은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셨네요?” “매형 죽었어요.” “그러셨구나. 이제 혼자 살아가야겠어요.”

50대 초반의 석진(가명)님은 인근 복지관에서 연결해주어 2년 전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이 살던 누나가 사망하였고 본인의 집에서 매형과 함께 살고 있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석진님은 건장한 체구로 중년이 되어 고혈압, 당뇨, 고지질혈증 등 만성질환을 얻었다. 석진님을 만나러 집에 가면 매형은 웃으며 “저도 암환자예요. 저도 상담해주세요”라고 말하곤 하셨다. 대학병원에서 꾸준히 관리하고 계시기에 내가 특별히 진료하진 않았지만, 가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좀 더 큰 거실의 침대에서 매형이 지내고 석진님은 작은 방에 이불을 깔고 지냈다. 오후가 되면 석진님이 외출하셔서 나는 항상 이른 아침에 들르곤 했다. 너무 일찍 와서 죄송하다고 하면 막 일어나 부스스한 채로 항상 괜찮다고 했다. 현관문 바로 앞에 앉아 석진님과 이야기 나누면 멀리 거실에서 매형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댁을 찾는 이유는 석진님의 전화기가 종종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 주변 사람들과 크고 작은 다툼이 있어서 이곳저곳, 심지어 경찰서에서도 연락이 오니 전화를 꺼놓는단다.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술 한두잔 하면 언성이 높아지곤 했나 보다.

복지관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서 연락하기도 하다가 석진님이 항상 집에 있는 시간이 이른 아침이란 걸 알고는 요즘은 이른 아침 연락도 없이 한달에 한두번 들른다. 오후가 되면 석진님은 동네 곳곳을 거닌다. 오며 가며 종종 만나서 인사 나누기에 어떻게 지내시는지는 대체로 파악이 된다. 어느 주말에 동네 축제가 열렸는데 어르신의 휠체어를 끌고 축제 구경하는 석진님을 만났다. 다소 험상궂은 인상에, 술 마시고 싸우는 모습을 본 터라 처음엔 나도 조심스러웠지만 석진님의 여러 모습을 보고 대화하니 누구보다 착한 마음을 가졌음을 알게 되었다.

석진님은 때로 시골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고향 내려가서 농사지으며 살면 좋겠다고. 도시의 임대아파트에서 석진님의 삶은 무료하다. 나름대로는 친해지려고 이웃에게 했던 말인데 오해가 되고 다툼이 된다. 의지했던 누나가 없으니 홀로 살아가기도 벅차다. 약 복용도 잘하시고 움직이시니 다행히 만성질환 관리는 잘된다. 잠시 함께였던 매형마저 사라지고 이제 정말 혼자가 된 석진님이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실지 걱정도 된다.

2년 사이에 석진님은 누나와 매형을 잃었다. 특유의 말투로 아무렇지도 않게 매형의 죽음을 담담히 말했지만, 누나의 부재 이후 그리움을 토로했던 때를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워낙 물건이 없던 집이라 죽음의 흔적이 별로 없다. 매형이 먹었던 마약성 진통제 포장지만 서랍 속에 어지러이 남아 있다. 가족의 죽음이 이렇게 가깝다. 홀로 살아가야 할 순간이 분명 온다. 물론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남은 이들과 서로 돌보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작은 방에 항상 깔린 이불 속 석진님이 마치 내 모습 같아서 친근했는데 이제는 거실의 침대로 자리를 옮긴 모습에 익숙해져야 한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의료인으로 석진님을 잘 바라봐야겠다.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꿈도 계획도 없다. 내 집도 남이 드나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 고마운 이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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