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명복만 빌어야 할까..친구 선호를 보낸 60일 이야기

한겨레 2021. 6. 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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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한겨레21]
60일간 빈소 지킨 평택항 산재 피해자 고 이선호씨 친구
그가 눌러쓴 '일하다 죽는 게 당연한 사회' 그리고 내 친구 선호
경기도 평택항에서 일하다가 산업재해로 숨진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2021년 6월19일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아들의 장례식에서 추모사를 마친 아들의 친구를 안아주고 있다. 이선호씨의 장례는 59일 만에 치러졌다. 연합뉴스
아버지와 같이 계단을 오를 때면 뒤에서 똥침을 놓는 어린아이 같고 친구 같은 아들이었던 선호.

선호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을지 모를 선호를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했다.

2021년 6월19일.

59일 만에 선호를 보냈다.장례식이 있던 그날 아침, 전날 빈소에서 밤새운 친구들의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그렇게 기다리던 발인날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친구들과 서로 한쪽 팔에 완장을 채워주며 이야기했다. 드디어 선호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나와 쉴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기쁘면서도, 이제 정말 선호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고. 

똑같았다, 죽음 이후 2주 다들 ‘나 몰라라’

나와 친구들은 60일 가까이 선호 아버지와 함께 선호의 빈소를 지켰다. 처음에는 ‘향불 안 꺼지게 해주겠다’고 선호에게 약속했기 때문이었지만, 이 또한 하나의 싸움이라는 걸 곧 알았다. 관심 갖는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도.

6월19일 선호를 추모하기 위해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으로 수많은 사람이 모인 걸 보고서야 선호를 보낸다는 실감이 났다. 선호의 죽음은 단지 젊은 청년의 안타까운 사고사인 것만은 아니다. 물질만능주의로 뒤덮인 모순된 사회가 한 청년의 생을 앗아갔다.

선호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다. 동네에서 같은 중·고등학교를 나온 친구가 많다보니 두루두루 친했고, 나도 친한 친구들의 소개로 선호를 알게 됐다. 선호가 사고를 당한 경기도 평택항도 친구들이 종종 아르바이트하던 곳이다. 4월22일 평택항에서 20대 청년 이아무개씨가 컨테이너에 깔려 숨졌다는 짧은 기사를 봤을 때, 그 이아무개씨가 ‘이선호’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낯선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할 것 같은 산업재해 사망 기사에 내게 익숙한 장소와 친구 이름이라니. 대다수 산재 사망 피해 유가족이나 지인들이 ‘내 친구가, 내 자녀가, 내 부모가 이런 일을 겪을 줄 몰랐다’고 하듯이, 나 또한 그랬다.

그동안 뉴스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산재 사망 소식을 접하며 ‘아, 정말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는구나. 누구나 산재 피해자가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분명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내 친구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둘째 누나와 영상통화를 하며 조카들 얼굴 보고 일하러 간 선호가 갑자기 죽을 거라고, 그게 마지막 모습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뉴스로만 산재 소식을 접할 때와 실제 내가 맞닥뜨린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눈앞에서 마주한 선호 가족들의 슬픔은, 살면서 처음 보는 슬픔이었다.

선호 이야기는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 벌어진 흔하디흔한 산재 사망 사고 중 하나로 묻힐 뻔했다. 사흘이 지나도 장례가 끝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몇몇 친구는 장례식장을 떠나지 못했다. 지역 정의당과 진보당, 민주노총 등이 급히 모여 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선호의 일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2주가량은 어디에선가 들어보기만 했던 상황을 똑같이 경험했다. 다들 나 몰라라 했다. 사고 뒤 일주일 만에 나타난 회사 쪽은 사고 원인을 선호에게 돌렸다. 선호가 죽은 이유도 다른 산재 사고들과 다를 것 없었다. 돈 아낀다고 사람 목숨은 뒤로하고 이윤을 택했기 때문이다. 24살의 짧은 삶을 살고 간 선호는 너무나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회사 탓에 죽었다.

6월19일 평택시 안중백병원에서 열린 이선호씨 장례식에서 한 조문객이 이씨의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20대 청년인 이선호씨는 2021년 4월22일 평택항에서 일하다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연합뉴스

해마다 2400명 일하다 죽는데, 어떻게 이리 덤덤한가

산재로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가는 현실을 아는 것과, 그 죽음의 이유가 소름 돋게 닮았다는 걸 안 이후의 감정은 완전히 달랐다. 같은 죽음이 반복되다 내 주변에까지 닥쳤다는 두려움과 무력함의 감정을 잊을 수 없다. 똑같은 이유로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데, 결국은 내 친구까지 죽었는데, 분명 세상이 뒤집혀야 할 일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언론은 고요했다. 선호 일을 언급할 엄두가 나지 않아 주변 지인들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내가 선호 사건을 자세히 알리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게 된 이유였다.

고용노동부와 해양수산부는 ‘권한이 없다’ ‘책임이 없다’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해수부는 노동부 관할이라고, 노동부는 인력이 부족하다며 서로 책임을 미뤘다. “미안하다” “유감이다” “나는 책임이 없다”는 말들 속에 선호의 장례는 59일 동안 치러지지 못했다.

그 시간 동안 선호 사건을 둘러싼 일을 지켜보면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반복되는 산재 사망 사고 모습이었다. 어떻게 산재 사망이 발생하는 원인부터 그 뒤에 대응하는 방식까지 모든 게 똑같을 수 있나. 몇 년 전 19살 김군이 숨진 서울 구의역 승강장을 찾아가,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충남 태안 장례식장을 찾아가 ‘안타까운 죽음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던 수많은 정치인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도 산재 문제가 아무런 대책 없이 뒷전으로 밀린 채 무방비 상태에 놓인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산재 같은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사회가 재난에 반응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일하다가 죽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당연한 사회가 됐을까. 해마다 노동자 2400여 명이 일터에서 죽는데 어떻게 이리 덤덤할 수 있는 사회가 됐을까. 오늘 하루에만 노동자 7명이 일하다 죽었는데, 어떻게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됐을까. 뉴스로 산재 소식을 접할 때는 잠시 가슴 아프고 잠시 분노하며 지나칠 수 있었는데, 막상 겪으니 그렇게 흘려보낼 수 없었다.

빈소에 있는 내내 궁금했다. 이렇게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찾아와 고개 숙이며 “미안하다”고 하는데, 유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는데, 왜 이들은 변화를 만들지 못할까. 산재를 막기 위해 대단한 기술력과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닌데, 말도 안 되는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 코로나19 방역처럼 예방에 수많은 변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당장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까. 어쩌면 우리 사회의 재난 가운데 가장 쉽게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게 산업재해인데, 어째서 변화는 가장 더딘 것일까.

60일 동안 느꼈다. 어떤 사람들에겐 어린 청년의 죽음보다 기업 이윤이 우선일 수 있다는 것을. 개방형 컨테이너에 적절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았고, 고유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갑자기 맡는 바람에, 현장에 있어야 할 안전관리자가 없어서 24살 어린 청년이 죽었다. 선호는 기본적인 안전교육을 받지 않아 죽었고,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환경이라 죽었다. 부실한 시설 점검 때문에 죽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끊임없이 비정규직을 만들고 원·하청이 복잡하게 얽혀 안전관리가 잘 안될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일했기에 죽었다.

80%의 죽음 외면한 법은 안 된다

날짜와 장소, 죽은 이의 이름만 달라질 뿐, 누군가의 친구가, 자녀가, 부모가 죽는데 기업 편의를 봐준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에야 시행된다. 그마저도 산재 사망 사고가 80% 넘게 발생하는 50명 미만 사업장은 3년 뒤에나 법이 적용되고 5명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에서 제외됐다.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지 않는 한, 80%의 죽음을 제외하는 법을 만들 수는 없다. 당장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이렇게 느긋하게 임할 수는 없다. 사람이 죽어가는 노동현장에 준비할 시간을 준다며 3년을 기다려줄 수는 없다. 그 유예된 기간에 내 친구가 죽었다.

선호의 죽음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재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강력한 시행령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엄격한 안전수칙 준수와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사람 목숨이 돈보다 소중하다 해도, 아무리 죽이지 말라 해도 듣지 않는다면, 바뀌지 않는다면, 사람 목숨이 더 비싸지도록, 사람을 죽이면 큰일이 나도록, 법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선호의 장례를 치렀지만 아직 남은 문제가 있다. △컨테이너 안전 관리·감독 등을 소홀히 한 해양수산부의 직무유기 △고장 난 개방형 컨테이너 점검을 소홀히 한 동방TS △전국 항만의 불법 근로공급 계약과 실질적인 안전대책 없음 등이 과제로 남았다. 과제가 해결되도록 끝까지 지켜봐주길 부탁드린다.

수선집 하는 친구 어머니 말동무 돼드리던 선호

두 달 동안 빈소에 있으면서 더 많은 모습의 선호를 알게 됐다. 수선집을 하는 친구 어머니 가게에 교복을 수선하러 갔다가 심심해하시는 친구 어머니와 30분 넘게 말동무가 돼준 선호, 학기 초 어색해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와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준 선호, 집에서는 애교쟁이 막내아들이어서 스무 살 넘어서도 아버지 볼에 뽀뽀하고, 아버지와 같이 계단을 오를 때면 뒤에서 똥침을 놓는 어린아이 같고 친구 같은 아들이었던 선호. 선호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다가도,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을지 모를 선호를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산재 사망 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는 진부할 정도다. 똑같은 사고 원인, 똑같은 대응, 비슷한 결말이다. 그러나 그 흔한 죽음을 경험한 주변인들의 세상은 그날로 무너진다.

그러니 이 사회가 선호의 죽음에 빚져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기폭제가 늘 누군가의 죽음이어야만 하는 세상, 죽어야만 변하는 이 사회를 더는 반복해선 안 된다. 죽음에 빚져 변화를 만드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김벼리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이선호씨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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