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번호판 300개 외우고 하루 1000번 고개숙이는 이 남자 [인터뷰]

방영덕 2021. 6. 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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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덕의 디테일] 권문현 콘래드 서울 호텔 지배인 인터뷰
권문현 콘래드 서울 호텔 지배인.
[방영덕의 디테일] 무려 4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출근 시간 30분 전까지 항상 회사에 나왔다. 출근해서는 곧장 칼 주름의 빳빳한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그러고 나서 호텔 정문 앞으로 향한다. 호텔로 들어오는 고급차를 맞이하고 손님들을 위해 로비 문을 여닫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호텔 도어맨(doorman)으로 활약 중인 권문현 콘래드 서울 호텔 지배인(68·사진) 얘기다. 그는 1977년 구리로 방 키를 깎아서 올리고 모든 객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도어맨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36년간 한 호텔에서 일하며 박정희 대통령 이후 전·현직 모든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봐 왔다. 호텔 도어맨인 그에게 직접 손 편지를 건네주며 격려해준 대통령도 있다.

2013년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정년퇴직할 무렵 콘래드 호텔 측에서 러브콜이 왔다. 진상 고객을 '애정 고객'이라 부르며 고객 응대에 뛰어난 그의 서비스 정신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퇴직 후 일주일만 쉬고 곧장 콘래드 호텔에서 도어맨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게 벌써 8년째다.

하루에 1000번씩은 기본으로 손님들께 인사하고 국내 정·재계 유명 인사들 차 번호 300여 개는 모두 다 머릿속에 입력해 뒀다는 권 지배인. 호텔 업계에서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으로 통하는 그를 만나봤다.

그의 일터인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날, 권 지배인은 기자보다 한발 먼저 약속 장소에 와 있었다. 상대방보다 항상 먼저 나와 기다리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2대8 가르마가 인상적이었다.

◆ 철저한 자기 관리

―나이가 잘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신다. 비결이 따로 있을까요.
▷피부 미용 일을 하는 딸내미와 아내 응원 덕이 크다. 콘래드 호텔에서 인생 2막을 연다고 했을 때 딸내미가 직접 눈썹 문신을 해줬다. 젊어 보이려면 해야 한다고 해서(웃음). 사계절 야외에서 일하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피부가 더 까무잡잡해져 딸에게 피부 관리도 받는다. 도어맨은 호텔의 얼굴과 같다. 항상 깔끔한 첫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정말로 하루 1000번씩 인사를 하시나요.
▷호텔 호황기엔 그 이상도 했다. 지금 콘래드 호텔 객실이 434개인데 최근 주말에는 객실 점유율이 90% 가까이 회복됐고, 피트니스 회원 등 기존 고객 등을 고려하면 하루 500명 넘게 호텔을 방문한다. 이 손님들이 오갈 때마다 인사하는 횟수를 생각하면 하루 족히 1000번은 된다.

―매일 몇 시간씩 호텔 앞에 서 계신가요.
▷9시간씩 꼬박 서서 일한다. 오전에 출근할 때는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오후 출근조이면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는 식이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드실 것 같은데.
▷단련이 돼 괜찮다. 곧 70세가 되는데도 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권문현 콘래드 서울 호텔 지배인.
◆ 코로나19의 습격

―코로나19 사태로 호텔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체감하시기에 어떤가요.
▷이번처럼 힘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40년 넘게 호텔 밥을 먹은 내가 이렇게 느끼니 오죽할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근무하던 호텔이 (코로나19에) 결국 문을 닫았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안타깝다. 단골 외국 손님 얼굴을 못 뵌 지도 몇 달이 돼 간다. 사실 호텔 직원은 감기에 걸려도 마스크 한 번 제대로 착용할 수 없었는데,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됐다. 코로나19로 국내 손님들도 변해 가고 있다.

―손님들이 변했다고요?
▷그렇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내가 자동차 손잡이를 열어주는 것을 거절하는 분이 생겨났다. 바이러스 감염 우려에 본인이 직접 연다거나, 전용 운전기사만 열도록 하겠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손님들 요청을 팀원들과 공유해 동일한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권 지배인은 코로나19 사태가 심상치 않게 확산될 무렵 호텔 인력 조정이 필요할 경우 제일 먼저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부서에 밝히기도 했다. 지금 당장 일을 관두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여서다. 회사는 반려했다. 그 대신 후배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 노하우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 나만의 서비스 노하우

―호텔 도어맨으로서 특급 노하우를 알려준다면요.
▷호텔리어에게 인사는 굉장히 중요하다. 때와 장소에 따라 고개를 15도, 30도, 45도 숙이는 방법이 달라진다. 인사를 잘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후배들 사이에 인사만 잘해도 훗날 평판이 좋더라.

그리고 디테일이 생명이다. 단골 고객은 차 문을 닫을 때 소리에 민감한지 아닌지를 기억해 문 닫는 세기를 조절한다. 또 차 안에서 신발을 바꿔 신고 내리는 분도 있기 때문에 호텔에 도착했다고 해서 바로 문을 열지 않는다. 정차 후 문을 열기까지 몇 분 정도 기다려야 하는지도 손님마다 다르다.

택시를 타고 오는 손님은 정차 후 카드 결제가 끝나고 영수증을 받을 때까지 기다린다. 고객이 타고 온 택시 번호를 메모하는 것도 기본이다. 나중에 분실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다.

―진상 고객을 '애정 고객'이라고 부르신다고 하던데.
▷호텔에 와 진상을 부리거나 갑질을 하는 손님은 결국 호텔에 애정이 있어서, 또 올 의사가 있기 때문에 컴플레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애정 고객이라고 부른다.

―애정 고객의 유형이라고 하면.
▷매우 다양하다(웃음). '야, 인마'라고 말을 함부로 하는 분부터 자신의 부나 인맥을 과시하려는 고객, 억지 부리며 그저 막 대하는 분도 있고. 한 번은 주차장에서 골프채를 꺼내다 자신의 고급 차량 트렁크에 흠집이 나자 물어내라고 하는 손님이 있었다. 당신 스스로 꺼내다 흠집이 난 것인데 괜히 옆에 서 있던 내게 막무가내로 물어내라고 했다. 1년여를 시달리다 결국 법무팀에서 해결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진상 고객을 대하는 나만의 비법은.
▷일단 조용한 장소로 이동해 "선생님, 명함 하나 주시겠어요?"라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고객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맞장구를 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한 고객들은 본인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반은 화가 누그러지더라. 물론 폭주하는 고객들을 말리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권문현 콘래드 서울 호텔 지배인.
◆ 기억나는 유명 인사들

―단골손님에 대한 추억이 참 많을 것 같다.
▷많은 분이 있는데, 1년에 한두 번씩 한국에 방문하는 일본 손님이 가장 기억에 먼저 떠오른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날 하필 눈이 많이 내렸다. 비행기는 뜬다고 하는데 공항까지 갈 방법이 없던 그분을 당시 내 차였던 포니를 타고 배웅한 적이 있다. 고맙다는 말을 적어 호텔 팩스로 보내줬다. 그런 인연을 쌓아 일본 여행길에 그분 댁에 놀러도 가봤고, 코로나19가 끝나는 대로 또 만나기로 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배우 김자옥 씨도 생각난다. 피트니스 회원이었는데 항상 호텔 직원들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유명 인사를 정말 많이 보셨겠어요.
▷박정희 대통령 이후 대통령은 다 봤다. 특히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을 잡아주면서까지 근무하며 어려운 일은 없느냐고 물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수 "수고 많습니다"는 말과 사인이 적힌 손 편지를 건네주시기도 했다. 그 한마디가 당시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재벌 오너가도 많지요?
▷일일이 다 실명을 거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청과 여의도에 각각 위치한 호텔에서 일하다 보니 정계는 물론 재벌도 많이 봤고, 지금도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호원 없이 혼자 출몰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내게 격의 없이 근무 환경은 어떤가, 월급은 얼마나 받느냐 등을 묻기도 했다.

권 지배인은 도어맨으로 일을 시작한 이후 신문의 인사 동정란을 빠뜨리지 않고 본다. 정·재계 소식을 챙기기 위해서다. 호텔에서 중요한 행사를 할 때는 관련 유명인 사진도 출력해 얼굴과 매칭해 기억하려고 한다. 그는 지금도 국내 정·재계 인사들 차 번호판 300여 개를 외우고 있다고 했다. 기억력이 좋아서가 결코 아니다. "절실했어요. 도어맨으로서 살아남으려면 꼭 외워야 했죠." 권 지배인이 말했다.

이러한 정성을 기울이며 그야말로 자기만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권 지배인은 호텔 단골 최고경영자(CEO)들과 쉽게 친해졌다. 퇴근 후 CEO들과 따로 티 타임을 갖거나 저녁을 먹기도 한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그를 통해 인생 얘기를 듣고 또 나누고 싶어서다. 그는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것이 자랑이 될 순 없다"면서도 "더울 땐 덥고, 추울 땐 추운 곳에서 일한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 먼저 떠나보낸 아들…그럼에도 "나는 호텔리어"

인생 2막을 잘살고 있는 그에게 올 초 크나큰 슬픔이 찾아왔다. 39세 아들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불과 6개월이 채 안 된 시점이라 아들 얘기를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웠는데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드님은 어쩌다….
▷정보기술(IT) 업체에 다녔는데 어느 날 심장마비가 왔다. 병원에 열흘간 누워 있다가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의사를 붙잡고 전 재산을 다 주고서라도 살려만 달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리 됐다. 늘 "아버지 어머니, 걱정 마세요"라고만 하던 아들이었다. 며느리와 손자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는데 손자만 보면 아직도 눈물이 나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다시 꿋꿋이 일을 하시네요.
▷40년 이상 같이 살아온 아내가 어쩌면 나보다 더 슬플 텐데, 먼저 씩씩해진 모습을 보여줬다. 나 역시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 몫까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호텔리어라는 게 그렇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고객들에게 제 감정을 결코 드러내서는 안 된다. 나 역시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는 인터뷰 도중 "인생 길게 보면 공평한 것 같다"는 말을 서너 번은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마음 한구석 굳은살을 안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그가 가장 하고 싶은 말 같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전설의 수문장답게 호텔 문 앞을 다시 지키러 갔다. 온화한 미소와 함께.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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