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못지킨 '주 52시간제'..내달 강행에 영세업체 줄도산 우려 ↑

장유미 2021. 6. 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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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외국인 인력도 못 구해 인력난 심화..세금 땜질 나선 정부에 불만 가중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다음달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확대 적용키로 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 대기업 제조사 생산직 근로자인 고충현(가명·42세) 씨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5일간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고, 이틀만 쉬는 생활 패턴이 최근 반복됐다. 기존에는 3명으로 구성된 3개의 조가 교대로 일을 했지만 다치거나 병가를 낸 직원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결국 5명이 업무를 나눠서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 씨는 "24시간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대신 나머지 인력으로 잔업을 하길 원했다"며 "회사에서 주 52시간 근무 위반으로 벌금을 내는 것이 추가 인력 충원으로 공장을 운영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기업들도 제대로 못지키고 있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정부가 다음달 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확대 적용키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영계는 영세 사업장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법 위반 시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 기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를 묵살하고 강행키로 해 관련 업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는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고 일과 생활을 균형 있게 하자는 취지로 지난 2018년 3월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근로기준법상 1주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 근로시간 12시간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정부는 기업 여력에 따른 준비기간을 감안해 그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우선 적용하는 등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했다. 50∼299인 사업장은 300인 이상 사업장(9개월)보다 법 위반 시 처벌을 유예한 계도기간을 1년으로 늘려준 뒤 올해 1월부터 시행했다. 그러나 5∼49인 사업장에는 계도기간 없이 일정대로 다음달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키로 했다.

[그래프=경총]

이에 경영계는 뚜렷한 대책 없이 영세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강행하려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영세 기업의 경우 만성적인 인력난으로 사람을 뽑지 못해 사업 운영이 어려운 상태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 추가 인력을 확보해야 하지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제조업 평균 공장 가동률은 코로나19 이후 크게 떨어졌다. 중소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66.2%까지 떨어졌다. 올해 4월에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71.1%로 상승했으나 영세 업체들은 인력난이 심해 공장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대다수가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체에 해당하는 소기업 사정은 더욱 좋지 않다. 중소기업 평균가동률이 70%를 넘기던 지난 3월에도 소기업의 평균가동률은 67.1%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 입국도 끊겨 정작 일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며 "공장을 돌리고 싶어도 온다는 사람이 없어 주문량을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중소 업체들은 그동안 정부에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관련해 계도기간을 부여해달라고 수 차례 요구해 왔다. 또 대기업에 9개월, 50인 이상 기업에 1년의 계도 기간이 부여된 것과 달리 대응력이 낮은 50인 미만 기업에 정작 이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적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중소 업체들의 대응력도 당장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작하기엔 역부족이다. 중기중앙회가 지난 10~11일 뿌리산업·조선업종 207개 사를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4.0%는 아직 주 52시간제를 시행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 중 27.5%는 다음달 이후에도 주 52시간제 준수가 어렵다고 답했다.

준비하지 못한 이유로는 인력난(42.9%)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 뒤를 주문 예측 어려움(35.2%), 인건비 부담(31.9%)이 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 업체들이 갑작스러운 주문량을 제 때 맞추기 어려워 신뢰 관계가 무너지면서 전체적인 공급 사이클에도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들이 경기 회복 시 대폭 증가할 생산량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보완 입법이 이뤄진 만큼 계도 기간을 주지 않고 바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5~49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사진=아이뉴스24 DB]

하지만 정부는 이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보완 입법이 이뤄진 만큼 계도 기간을 주지 않고 바로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5∼49인 사업장도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위반 시에는 사업주에게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다만 바로 처벌되진 않고 신고 접수 후 최장 4개월의 시정 기간이 부여된다.

이에 경제단체들과 영세 업체들은 탐탁치 않은 모습이다. 또 주 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하려면 신규 채용이 필요하지만 자금이 부족한 기업들로서는 인력난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5인 미만으로 나눠 법인을 설립하는 편법이 횡행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여기에 정부가 3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서는 내년 12월31일까지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추가 허용했으나 이마저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경총,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 무협, 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들은 계도기간 부여 등의 대책 마련을 함께 촉구했다.

이들 경제단체는 "대기업에 9개월, 50인 이상 기업에 1년의 계도 기간이 부여된 점을 고려하면 대응력이 낮은 50인 미만 기업에는 그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며 "최소한 조선·뿌리·건설업 등 근로시간 조정이 어렵거나 만성적인 인력난으로 주 52시간제 준수가 어려운 업종, 집중 근로가 불가피한 창업기업에 대해서라도 추가적인 준비기간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갑작스러운 주문이나 집중 근로가 필요한 업체들을 위해 특별연장근로 인가제 기간을 현행 연 90일에서 180일로 확대할 필요도 있다"며 "인력 운용과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느끼는 영세 기업들을 위해 8시간 추가 연장 근로제 대상을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만이라도 5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경제단체들과 영세업체들이 반발하자 정부는 지원금 카드를 뽑아 들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신규 채용을 한 기업이 일정 기간 고용을 유지할 경우 신규 채용자와 재직자 인건비를 한 달에 각각 80만원, 40만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업계에선 "고용 시장을 왜곡시킨 상황에서 세금을 쏟아 불만을 달래는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영세 업체들의 근로자들은 당장 줄어든 작업 시간으로 인해 임금이 낮아지게 되면서 퇴사를 하려고 하는 이들이 많아질 수 있다"며 "정부가 세금을 풀어 생색내기에 나섰지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영세 업체들 사이에서 안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세 업체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려면 직접적인 비용 지원보다는 오히려 제도적 지원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다양한 산업현장의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기존 1주 단위 연장근로 제한을 월 단위나 연 단위로 바꾸는 제도 변화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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